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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글귀 (Kurt Vonnegut, Jr.) by 한빈翰彬



 로즈워터는 옆 침대에서 책을 읽었는데, 빌리가 그를 대화에 끌어들여 지금은 무얼 읽고 있느냐고 물었다.
 로즈워터는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것은 킬고어 트라우트가 쓴 <외계에서 온 복음서>였다. 트랄파마도어 인과 흡사하게 생긴 외계인 방문자에 관한 책이었다. 그 외계인 방문자는 기독교를 깊이 연구했다. 왜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쉽게 잔인해지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그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신약의 어설픈 이야기 솜씨가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복음서의 의도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자비로워질 것을, 나아가 낮은 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실제로 이렇게 가르쳤다.

 누구를 죽이기 전에, 그자에게 든든한 연줄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확인하라.

 그렇게 가는 거지. 


 *     *     *


 그리스도 이야기들이 안고 있는 결점은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가 실은 우주에서 가장 힘센 존재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라고 외계인 방문자는 말했다. 신약 독자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십자가형 대목에 이르면 당연히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며 로즈워터는 그 부분을 큰 소리로 다시 읽었다.

 오, 이런―그 사람들 이번에는 멋대로 죽일 상대를 잘못 골랐어!

 그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이런 말이 되었다.
 "멋대로 죽이기에 적당한 사람들이 있다."
 누구인가? 든든한 연줄이 없는 사람들. 그렇게 가는 거지.


 *     *     *


 외계에서 온 방문자는 지구에 새 복음서를 선사했다. 그 책에서, 예수는 정말로 보잘것없는 사람이었고, 그보다 연줄이 좋은 사람들에게 눈엣가시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른 복음서들에서 했던 아름답고 당혹스런 말들을 다 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어느 날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그 십자가를 땅에 박아 세우고 즐거워했다. 그들은 그 일로 어떤 보복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독자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 복음서에는 예수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사람이었는지를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보잘것없는 사람이 죽기 직전, 하늘이 활짝 열리고 천둥과 번개가 쳤다. 벽력 같은 하느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그 부랑자를 자신의 양아들로 삼겠으며 그에게 우주 창조자의 아들이 누릴 모든 권리와 특권을 영원히 부여하겠노라고 말했다. 하느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 순간 이후, 누구든 아무 연줄이 없는 부랑자를 괴롭히는 자는 무서운 벌로 다스리겠노라!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Slaughterhouse-Five>





덧글

  • 두란두란 2013/09/30 18:23 # 삭제 답글

    오늘의 글귀... 요즘은 복싱글 뿐만아니라 이글도 자주 안올라와서 조금 슬프지만 읽을때마다 참좋네요 저도 개인적으로 문학이나 그림같은 가만히 놓고 보는 예술을 좋아해서. 재미있습니다. 뭐 재미있다라고하면 꽤 가벼운 뉘앙스처럼 느껴지지만 그속에 깊이를 주는 소소한 글들인거같습니다. 지평도 조금 넓어지는듯. 커트 보거넷 을 검색해보았는데 전쟁을 겪은 분이시더군요. 이런 분들이 나중에 특히 나이가 들었을때의 작품은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도 한빈님이 오늘의 글귀나혹은 복싱글 같은데 인용된 부분(지난 마티세가르시아글에서의 얼음과 불의 노래같은)을 찾아보곤하는데 즐겁네요. 그중엔 책을 사서 읽어보고싶은것도 생기고 ..

    그나저나 알바레즈-메이웨더 언제 올려주시나요 엉엉진짜 추석때부터기다렸는데 목이 빠질것같습니다.ㅠ
    요즘 많이바쁘신듯 ㅠㅠ
  • 한빈翰彬 2013/10/03 02:38 #

    글귀가 작동을 하고 있었군요. 저는 제가 읽은 책을 메모하는 용도로 많이 써 왔는데.

    추석 전에 데드라인을 그어 놓고 끝을 봤어야 하는데 추석 이후로 일이 갑자기 폭증하는 바람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려 글을 읽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복싱 공부조차 못하는 지경입니다. 요즘은 참으로 바쁘군요. 커트 보네거트 작품은 위트가 넘치기 때문에 읽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제 추천작은 천병관의 <고래>이지만요.
  • 가생이 2013/10/01 22:04 # 삭제 답글


    재미난 글이군요. ㅋ 사실 신약도 보면 겉모습과 외관을 봐서는 예수가 유일신의 아들임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는 게, 핵심적인 내용 중에 하나고 결국 외관을 보고는 알 수가 없으니 그게 빽 없어 보이고 죽여도 괜찮은 자일 것처럼 보여도 함부로 그렇게 해선 안된다는 것인데, 그런 핵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신자들은 자기 편한 대로 있는 글도 받아들여 핵심도 조작해 버렸죠. 신약성경으로만 보자면 예수는 당시에 저 원문의 외계인이 한 말처럼 연줄 없는 부랑자나 마찬가지처럼 보였고 그의 제자들도 당시에는 대단한 위치의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필부였지. 그런 자들이라도 되려 신이 선택해서 함께하면 대단한 일을 하게 된다는 게 신약에 있는 내용 중 하나인데, 신자들은 어느새 예수의 뒤에 있는 유일신의 파워만 기대하게 되었고 그게 믿는 구석이 되어서 쉽게 잔인한 모습으로 변해버린다는 게 씁쓸합니다. 내 빽이 든든한 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빽이 그네들의 경전이라는 성경에 따르면 공명정대해서 아무 편이나 막 드는게 아니라는 것도 생각해야 되는데 말이죠.

    명절 잘 보내셨나요? 메이웨더 대 알바레즈 분석글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ㅜㅜ 그리고 얼마 후 벌어질 마르케즈 대 브래들리도 분석글을 올려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단평일지라도요. ㅋ 혹시 팩 대 리오스도 올리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 한빈翰彬 2013/10/03 02:54 #

    메이웨더-알바레즈는 곧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르케스, 브래들리는 도대체 브래들리가 잘 가늠이 안됩니다. 몸이 어떻게 그렇게 기괴하게 변할 수 있는지... 현재 파퀴아오는 압도적인 배당율만 믿고 베팅하기엔 상당히 high risk인 상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과객 2014/08/02 18:09 # 삭제 답글

    그렇구나. 와. 어떻게 이런 해석을 할 수 있을까, 저 글의 작가가 놀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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