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빈翰彬's 얼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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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gh ain't Enough by 한빈翰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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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예전부터 카넬로 알바레즈를 높게 평가해 왔는데 그 평가를 지금 와서 수정할 생각은 없다. 많은 이들은 알바레즈의 최근 발전이 눈부시다고 말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기술에 국한되어 있고 내가 보기에 알바레즈는 예전부터 강했다.

 메이웨더-오르티즈 언더카드로 기억하는데, 파이트 콘텐더 출신 알폰소 고메즈와 붙어 테크니컬 넉아웃을 시켰던 경기. 아직도 HBO Greatest Hits 사울 알바레즈 편에는 이런 코멘트가 붙어 있다. "이른 다운에도 불구하고 고메즈는 게임의 템포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똑똑히 기억하기로, 중반 라운드에 알바레즈는 메이웨더를 보고 영감을 얻었는지 숄더-롤을 들고 나와 새로운 가드 형태를 시험해 보였다. 아직 패배가 허락되지 않는 위치에서 자신의 위기를 감수하고 태연히 새로운 방식의 가드를 시도했던 것이다. 이 정도 배포를 가진 선수는 많지 않다. 

 20살에 호세 미겔 코토와 붙었다가 1라운드에 게임을 망칠 뻔한 이후, 트레이너의 말에 집중해 다시 돌아오는 경기를 보면 트레이너와의 호흡보다 그 자신의 큰 배포가 더 눈에 띈다. 아마추어 커리어 없이 프로에 와서 도리어 이런 경험에 더 익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선수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뿐더러 정신적으로 강인하다. 

 알바레즈를 보면 처음에는 강력한 콤비네이션에 눈을 뺏기기 십상인데 잘 보이지 않는 그의 장점은 리듬과 템포이다. 알바레즈는 상대가 공격을 하든 자신이 공격을 하든 혹은 그 둘 다든 간에 항상 일정한 페이스로 경기를 끌어 나간다. 상대가 아무리 거칠게 펀치를 휘둘러도 거기에 자기 리듬을 내주지 않는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이걸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알바레즈의 방어 시스템 덕분인데 거북이 가드라 할지라도 그가 상당 부분 유연하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예전 글에서 알바레즈가 바르가스와 차베스를 합친 것 같다라고 비유한 적 있는데 유연함만을 추구하다가 티토에게 부러지고 만 바르가스보다 더 나은 재능인 것 같다. 

 즉, 적의 가드를 거북이 가드를 통해 흘리거나 스텝 백 해서 무력화 한 다음 계속해서 일정 템포로 경기를 이끌기를 강요하는데 이 면에서 알바레즈가 마지막으로 위기에 빠졌던 건 약관 때의 호세 미겔 코토 전이 마지막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 이후로 알바레즈가 템포를 내 준 적은 없고, 본질적으로 위기에 빠졌다고 본 적도 없다. 




2

 미겔 앙헬 코토와의 대진설이 거의 확정적일 즈음 알바레즈와 코토 중 누가 이길 것 같냐는 질문에 한치의 주저함 없이 알바레즈를 꼽은 이유도 거기에 기인한다. 코토는 자신이 경기를 이기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대책없이 무너지거나 경기를 컨트롤하지 못했다. 마가리토처럼 강력한 턱을 가진 상대가 자기 흐름을 강요할 때 그걸 멈춰세우는 방법을 알지도 못했다. 

 코토-마가리토 1차전 그날 아무리 초반 라운드에서 코토의 움직임이 표홀하고 날카로웠다 해도 코토를 잘 아는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강풍 부는 고층 빌딩 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필립 쁘티로 보였을 게다. 결국 그 날 코토는 쌍둥이 빌딩에서 떨어져 버렸고 때문에 알바레즈와 붙는다 해도 자기 템포를 잃고 매 순간 공격을 강요당하다가 무너질 것이 보였기에 어떤 단서도 붙이지 않고 알바레즈를 골랐었다. 

 그런 의미에서 알바레즈는 메이웨더와 닮았다 하겠다. 하지만 템포를 내주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메이웨더가 알바레즈보다 훨씬 공격적인데, 알바레즈가 상대 공격을 무력화 시키고 뒤이어 자신의 공격을 전달한다면 메이웨더는 매 순간 상대의 공격에 카운터를 걸며 공격을 강요한다. 알바레즈가 7파운드 위의 마르티네즈나 마트로시안, 트라우트, 라라와 붙어서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메이웨더에게 가장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알바레즈의 방어 시스템이 메이웨더를 견뎌내는가가 가장 중요한 시사점이 되리라 생각하며, 템포를 누가 통제하느냐가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방어하기도 까다로운 바디 잽을 단발 스트레이트와 같이 사용하는 메이웨더는 단발 손속을 무기로 알바레즈에게 자신의 템포를 강요할 것이며, 알바레즈는 메이웨더를 상대로 어퍼 바디 무브먼트를 통해 가드를 깨려고 시도할 수밖에 없다. 알바레즈가 패기있게 시전한 숄더-롤에서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면 메이웨더의 방어 시스템 또한 알바레즈에게 시험당할 텐데, 다만 숄더-롤은 바디샷 방어에 최적화된 방어법인 바 알바레즈의 어퍼컷이 얼마나 날카롭냐에 킬링 샷의 향방이 걸려있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할 것이다.


3

 내가 보기에 지금 메이웨더의 시합 일정이 불투명한 것은 단순히 이번 시합에 단일 계약이 아닌 여러 계약이 걸려 있어서인데 현재는 시합 날짜만 5월 4일로 잡혀 있을 뿐 상대도 공식적으로 확정되지 않았고 시합 상대 발표 날짜도 정해져 있지 않다. 일단 메이웨더가 보유하고 있는 두 개의 챔피언 벨트 때문에 잠정 챔피언과의 방어전이 예정되어 있고 그 둘은 로버트 게레로와 사울 알바레즈이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메이웨더가 5월에 게레로와 붙고 9월 메히코 독립기념일 주간에 알바레즈와 붙는 그림을 예상하고 있다. 발표가 느려지는 이유는 5월 알바레즈의 경기가 메이웨더 경기와 또다시 더블 헤더로 치뤄지게 된다면 그건 오로지 알바레즈가 다음 경기에 대한 보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차기 경기에 대한 보장을 메이웨더-게레로 계약에 집어넣으려면 애로사항이 꽃필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게레로의 승리 시 리매치 조항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결국 계약에서 갑은 플로이드이기에 궁극적으로는 게레로-알바레즈 순으로 경기가 잡히리라 보고 알바레즈는 차기 상대로 메이웨더를 보장받는다면 메이웨더와의 경기가 물 건너가게 할 수는 없기에 5월 경기에선 적당한 컨텐더를 잡으리라 본다. 트라우트만 손가락 빨면서 옆 동네 잔치를 구경하게 되겠다.

 만일 코토가 트라우트를 상대로 적당한 우세만 점했어도 판정단이 코토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고 그렇게 되었다면 5월 4일 코토-알바레즈, 메이웨더-게레로의 이상적인 더블 헤더가 완성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세상 일은 그렇게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고, 소프 오페라에서 퇴장당하는 역할이라도 오페라 바깥의 세계에선 자유 의지를 갖고 날뛸 수 있는 것이다. 트라우트는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단호하게 거부했고 그 결과 국외자였던 메이웨더 경기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런 일이 다반사인 것이 이 동네이고 그런 일은 멀리 찾을 것도 없이 티모시 브래들리를 둘러싼 일들에서도 볼 수 있다. 누구도 미래를 볼 수는 없기에 각자의 판단 하에 최선으로 움직인다. 존 메이나드 케인스는 경제학적으로 균형 가격이란 단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가격이란 계속해서 균형 상태로 가려는 동적인 상태에 불과하다는 뛰어난 통찰을 보였고 그런 직관은 분야를 뛰어넘어 우리 모두는 게속해서 최선을 추구한다는 결론으로 직행한다. 복싱 씬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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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빈翰彬's 얼음집 : 폭풍전야: 메이웨더-알바레즈 전에 대한 "무모한" 설명 2013-09-13 14:26:45 #

    ... 메이웨더 공격을 맞서는 상대방은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피로감과 프레싱을 맛본다. 숨을 들이쉬기 전에 폐부, 혹은 안면을 꿰뚫는 펀치를 꽂기 때문이다. 예전 글에서 알바레즈의 숨겨진 장점은 리듬과 템포라고 쓴 적이 있다. 알바레즈는 지금까지 상대를 맞선 와중 단 한 순간도 자기의 느린 템포를 뺏기지 않았다. 커리어에 ... more

덧글

  • 만년초보랑께 2013/01/21 16:13 # 삭제 답글

    알바레즈에 대한 글이군요 ㅎ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글중에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트라우트가 자신의 배역을 거절했다는 것은 코토가 이기고 까넬로를 만나는 흐름에 어깃장을 놓았다는 이야긴가요?? 시트콤의 외부인이라고 표현하셔서 좀 헷갈립니다 ㅠㅠ 복싱신에 잠시 신경을 못써서 이런 부분에서 막혀버렸네요 ㅋ
  • 먼년초보랑께 2013/01/21 16:16 # 삭제

    헷갈리는 부분이 시트콤 바깥에서 날뛴다는 부분이네요 ㅎ;;
  • 한빈翰彬 2013/01/26 03:57 #

    네, 복싱이 만약 시나리오가 정해져 있는 레슬링이었다면 코토가 트라우트를 이기고 올해 5월 알바레즈와 붙어 코토-알바레즈, 메이웨더-게레로가 더블 헤더로 진행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겠지요. 하지만 복싱은 레슬링이 아니고, 선수들은 모두가 자기가 지기를 원한다고 할지라도 이겨버릴 수 있지요. 트라우트는 그런 당연한 수순에 어깃장을 놓았고, 매치메이킹은 더 복잡해졌지만 이런 것이 복싱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 가생이 2013/01/21 21:55 # 삭제 답글

    사울도 드디어 메이웨더와 메가파이트를 바라보는 위치까지 성장했군요. 과연 메이웨더가 슈퍼웰터의 생생한 라이징 스타를 맞아 매치를 해 줄지 기대됩니다.
  • 한빈翰彬 2013/01/26 04:05 #

    알바레즈의 숨겨진 장점은 디펜스라고 봅니다. 겉으로는 그의 화려한 공격에 감춰져 있지만 말이지요. 메이웨더의 매치메이킹이 지금 재미있게 흘러가고 있는데 나중에 다룰 기회가 있겠지요.
  • 한별 2013/02/01 11:49 # 삭제 답글

    한빈님 덕분에 알바레즈를 다시 봅니다. 전 그냥 특징없는 선수라고 생각했었는데 자신만의 리듬.
    이것두 이렇게 강점이 되는군요.
    언제한번 에드윈 볼레로 평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복싱 외적으로 보면 보기도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의 실력이나 이력으로 보면 그의 마치지 못한 복싱 역정이 아쉽고 그의 대한 평가도 극적으로 갈리기도 합니다.
    로치는 그를 한때 톱텐중에 4위로 평가하기도 했더군요. 물론 파퀴가 1위였고.
    한빈님의 평이 정말 궁금해집니다.^^
  • 한빈翰彬 2013/02/03 22:59 #

    에드윈 발레로, 알겠습니다.
  • 탑블 2013/02/08 12:15 # 삭제 답글

    대단한 통찰... 잘 읽었습니다.
  • 한빈翰彬 2013/02/13 06:10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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