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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02. 20. 노니토 도나이레 vs 페르난도 몬티엘. by 한빈翰彬



그는 오랫동안 감금되었기 때문에 포효하면서 등장해야 했던 것이다. 

- 오스카 와일드의『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대한 로버트 미겔의 서문 中




2011. 02. 20.

미국 라스베가스.


 일단 경기를 보자, 별로 길지도 않다.





 복싱 갤러리의 Alan좌는 다르치니얀 전 이후 도나이레가 몬티엘을 이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다르치니얀 전 이후의 모든 경기를 본 지금으로서 Alan좌의 말에 동의하지만, 도나이레가 몬티엘을 우습게 봤다거나 기존 상대와 똑같이 임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분명히 도나이레의 기존 경기와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리듬이다.

 대 몬티엘 전 1라운드에서 도나이레는 거의 자신의 리듬 자체를 없애버렸다. 오히려 일정한 리듬을 갖게 되는 걸 기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반적으로 복서의 스텝을 과장해서 말하자면 체중을 진자처럼 이리저리 흔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도나이레는 거의 체중을 중심에 둔 채로 발만을 움직이면서 공방을 일삼았다. 공방 때만 체중을 급속도로 움직이고 나머지 때는 일정한 리듬으로 생각되지 않는 움직임으로 움직였다.  

여기서부터는 가정과 추론의 영역이다. 내 생각엔 훈련된 복서가 계속해서 리듬을 일그러트리기는 어려우므로, 여러 리듬을 익히고 그걸 복합적으로 조합하는 방식으로 움직인 것이 아닌가 싶다.

 1라운드에 도나이레는 몬티엘을 스피드로 압도했고, 몬티엘은 도나이레의 펀치에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 이걸 12라운드 내내 지속할 수 있을까를 아직 괄호에 넣고 볼 수밖에 없다. 도나이레 캠프에선 처음부터 경량급에 걸맞지 않은 단기전을 준비했고, 약속대로 2라운드에 낙아웃시켰다. 하지만 12라운드 내내 일정한 리듬 없이 급속도의 순속을 계속 도나이레는 보일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도나이레의 독특한 움직임 하나 더, 보통 전진스텝은 앞 발을 먼저 내딛고 뒷 발을 끄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즉 기존 보폭에서 넓였다가 줄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도나이레는 일반적으론 저런 식으로 움직였지만 가끔씩은 독특하게 움직인다. 뒷 발을 먼저 줄였다가 튕겨나가듯이 달려들어 최고속의 단발을 날렸다. 이건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하나는 도나이레의 순속을 위한 것과 두번째는 거리싸움에서 몬티엘을 속이려는 움직임이다. 어쨌든 이건 성공적이었고, 도나이레는 몬티엘을 스피드로 가지고 놀았다. 

 1라운드의 스피드의 압도는 도나이레의 앞손을 거의 아래까지 내려와도 몬티엘의 주먹과 도나이레의 얼굴과의 차이가 링 이끝에서 저끝까지의 거리만큼 멀어보이게 만들었다. 특히 더킹으로 파고든 후 스윙성 레프트훅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던 무시무시한 펀치였다. 1라운드가 끝났을 때 이미 몬티엘의 얼굴은 새파랬다.
  
 2라운드, 도나이레는 몬티엘에게 자신이 리듬을 주었다고 설명했고, 그는 느려졌다. 도나이레가 느려졌다는 증거 하나, 그의 앞손이 올라갔다. 몬티엘은 그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까. 도나이레는 몬티엘이 공격하는 걸 보았고, 맞았다. 도나이레는 몬티엘의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았다고 말한다.그리고 지켜본 지 2분 뒤 그 펀치가 터졌다. 광속 레프트훅.

몬티엘이 라이트를 뻗을 때, 도나이레가 수행한, 몸 전체가 거대한 원을 그리며 도는 레프트훅은 몬티엘이 일어난 게 더 신기할 정도의 펀치였다. 도나이레는 카운터펀처에 걸맞지 않게 체중을 거의 5:5로 배분해놓고 때리는데 그 레프트훅은 뒷발을 축으로 돌리는 것도 아니었고, 앞발을 축으로 돌리는 것도 아니었다. 몸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돌려버리는 펀치였다. 지금까지와는 약간 다른. 

 그 펀치를 보니, 예전에 행인7님이 올렸던 '슈가' 라는 만화책의 몇 장면이 떠오른다. 복서들에겐 몇 가지 차원이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부분을 중간부터 잠시 옮겨 보자면, 다음과 같다. 




  

(클릭하면 커진다. 아마도.)


 마지막에 있는 일본 특유의 일본 자뻑을 차치하면 이 장면은 상당히 볼 만한 요소가 있다. (물론 이 장면을 올려주신 행인7님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복싱의 기본은 상대방을 통제하는 것이고, 복싱의 진리는 공방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복서는 그래서 언제나 두려움과 싸워 왔다. 상대방과 마주하는 두려움, 상대방의 펀치가 닿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가 치기 위해서 상대방의 거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두려움. 즉, 내 거리는 상대방의 거리와 같다는 두려움. 

 하지만 여기서 좋은 복서라면 같은 거리가 같은 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간단히 위빙을 생각해 보자. 상대방이 오른손으로 공격할 때 우리는 위빙으로 왼쪽으로, 즉 상대방이 팔을 뻗은 바깥쪽으로 빠져나간다. 왜 바깥쪽인가?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면 나는 칠 각도가 생기지만 상대방은 칠 각도가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3차원이다.
   
 카운터도 마찬가지. 내가 치지만 상대방이 치지 못하는 공방이 분명히 존재하고, 상대방이 어떤 방식으로 공방을 해 올 줄 안다면, 3차원 복서는 그 공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안다. 그러나 그 모든 걸 절대적으로 무너트릴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 시간.

 상대방이 치지 못하는 각도를 유도하고 자신이 치는 것이 3차원 카운터라면 상대방의 펀치를 유도하고 그 펀치가 도달하기 전에 자신의 펀치를 먼저 꽂아넣는 것은 4차원 카운터다. 이것이 시간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도나이레가 몬티엘 전 2라운드에서 보여준 것이다.

 메이웨더가 리키 해튼 전에서 뭘 했는지 우린 다 알고 있다. 나는 그의 버릇을 찾기 위해 6라운드동안 관찰했어, 메이웨더는 말했다. 6라운드 동안 관찰한 이후 메이웨더는 해튼을 8라운드에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갔고, 10라운드에 외과적으로 해체했다. 도나이레는 그 작업을 2분만에 해냈다. 복서의 단순 수량적 비교는 분명 함정에 빠지는 길이지만, 도나이레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도나이레는 지금까지 내가 봐 온 복서들 중 거리감각이 제일 예민한 선수 1위로 뽑힐 만하다. 뒤로 백스텝하면서 휘두르는 레프트훅이 그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보통은 두려움에 헛방으로 휘두르는 레프트훅이 가장 정교한 거리축을 다루는 도나이레의 손에선 뒤로 물러나면서 다운을 뽑아내는 카운터로 변한다. 여기에 담대함이 덧붙여져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거의 180도에 가깝게 기울어진 그의 뒷발은 그가 카운터펀쳐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대 모든 카운터펀쳐가 다른 복싱 스타일에 덧붙여진 부수적인 카테고리였음과 반대로 도나이레는 거의 모든 경기를 카운터펀치로만 수행한다. 단발로 승부한다는 점에서 같은 필리피노인 매니 파퀴아오와 다르지만, 그 정확도에선 파퀴아오에 비견될 만하다. 마침내 넥스트 파퀴아오가 탄생했다.



 


 여기서부턴 도나이레에 대한 물음,

 Q1; 파퀴아오가 페더급부터 시작해 슈퍼웰터까지 파괴하는 데 6년이 걸렸다. 도나이레는 어디까지, 얼마나 빠르게 이룰 수 있을 것인가.

 Q2; 아직 도나이레가 검증받지 못한 것, 증량 이후의 체력, 맷집. 

 Q3; 도나이레가 감보아랑 붙으면 꽤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질 것 같지 않나. 후안 마뉴엘 로페즈는 몬티엘보다 더 나은 그림을 연출할 것 같지 않다. 버나드 콘셉시온과 후안 마뉴엘 로페즈 1라운드 마지막 20초의 광경을 떠올려보면 도나이레는 똑같은 상황에서 몬티엘전과 똑같은 펀치를 꽂을 수 있다. 감보아는 엄청나게 정교한 콤비네이션을 가지고 있다. 과연 거기에 도나이레가 도전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Q4; 도나이레와 몬티엘 첫번째 다운을 뺏어낸 레프트훅이 일반적인 서클링과 다르다는 건 모두 다 잘 알고 있을 이야기. 두 발 모두가 원을 그리면서 몸 전체로 치는 펀치였다. 그게 일반적인 돌리는 것보다 더 빠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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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hahgy 2011/02/23 22:08 # 삭제 답글

    팩맨이 마르케즈랑 2차전 뜰때 언젠가 리키해튼도 이긴다는 생각은 안들었고, 팬심이지만 발도미르가 제법 웨더 괴롭힐꺼라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다분이 흐리고 주관적인 시각에서도 도나이레는 페더 우주멸망매치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어보이고 순수 다체급 석권만 노린다면 맥시멈 라이트급까지 예상이 되는데 참 기가막히네요 젊었을때 웨더나 팩맨보다 더 전망이 좋게보이니

    조금만 준비하면 빠른 시일안에 캣시디스도 이길 것 같은 이 설레발은 참..
  • 한빈翰彬 2011/02/24 10:06 #

    근데 다체급 석권을 노리기엔 나이가 꽤 있는 편입니다. 27살에 페더로 올라왔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 됬죠.

    그리고 언제나 성공적인 증량에 설레발은 없애야 하는 요소라...에잇!

  • 행인7 2011/02/24 23:09 # 삭제 답글

    평소 몸무게가 140파운드고, 지금 현재로는 슈퍼 페더까지 체급을 올릴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문제는 일본 복서들과 붙고 싶다고 하네요.... 일본 복서들이 슈퍼 페더까지 벨트를 가지고 있으니 이들을 모두 이기면 굉장히 쉬운 다체급 석권을 이룰겁니다. -_- 슈퍼 벤텀의 리니얼 챔프는 바스케스라고 보고, 페더급은 역시 후안마, 감보아가 양대 산맥이죠. 이 세명을 잡았을 때 도나이레는 진정한 레전드 오브 레전드가 될 수 있겠죠.

    일본애들은 솔직히 몬티엘만 가도 다 잡아버릴텐데.....
  • 한빈翰彬 2011/02/25 01:07 #

    도나이레가 가기만 해도 무릎을 꿇고 벨트를 바칠 일본 챔프는 필요없습니다. 어렵더라도 진정한 길로 가야합니다. 파퀴아오는 멕시칸 3인방과의 경기를 통해 비록 패배를 얻었을지라도 진정한 초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바스케즈 주니어, 후안 마뉴엘 로페즈, 유리오키스 감보아는 노니토의 3인방입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노니토를 담금질 시켜줄 것입니다. 이미 너무 오래 갇혀 있었습니다. 포효를 지르며 등장했으니, 이제 대관식을 치르러 가야죠.
  • 행인7 2011/02/24 23:59 # 삭제 답글

    다른 얘기지만 복싱 만화 슈가는 제가 읽은 복싱 만화 중 정말 최고였습니다. 더파이팅이야 이미 복싱 판타지가 되버렸지만 슈가는 정말 천재 복서를 아주 잘 표현한 만화죠.
    오랜만에 저 장면을 보니 다시 보고싶네요. 새책방에는 없으니 헌책방 뒤져보고 없으면 인터넷에서 찾아서 사야겠습니다.
  • 한빈翰彬 2011/02/25 01:09 #

    악 제가 지름신을 불러온 겁니까. :D
  • ㅁㄴㅇㄹ 2011/02/25 19:08 # 삭제 답글

    글을 기다렸습니다~ㅎㅎ

    감보아 vs 도나이레는 페더급에서 산체스 대 고메즈 이후로 또다른 battle of the little giant가 될꺼 같네요

    잘 읽고, 글 좀 퍼가겠습니다
  • ㅁㄴㅇㄹ 2011/02/25 19:11 # 삭제

    도나이레는 앞으로 5년간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면, 슈퍼 페더까지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라이트급부터는 저도 예측을 못하겠네요...
  • 한빈翰彬 2011/02/26 15:40 #

    감사합니다. ^^ 그런데 페더에서 살아남아 비상할 수 있는지부터 봐야 하겠죠.
  • 마르킹짱 2011/02/28 11:01 # 삭제 답글

    이번에도 멋진 글 감사합니다. 한편의 물리학 책을 보는 것 같습니다. 과학이란 본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발견하여 미래를 예측하려는 노력인데, 엄중한 분석을 마치신 스윗 사이언스의 고수들은 대부분 팩맨이 마가리토를 피떡칠 할 것이고 도나이레가 몬티엘을 초반 라운드에 보낼 것이라고 정확한 예측들을 하시더군요.

    그렇다면 이변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왜 수퍼 주다는 코스타추에게 그렇게 비참하게 무너졌을까요? 로이존스는요? 아니 그것까지는 갈것도 없고 타이슨의 강고한 왕좌는 무명복서에게 무너져야만 했던 것일까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조차 틀린 예측이 있어 보완이 불가능하다던데 스윗 사이언스에도 미지의 영역이 있는 것일까요? 그냥 잡설이었습니다. 다음글이 또 너무나 기다려집니다.
  • 한빈翰彬 2011/02/28 12:23 #

    음, Alan좌 같은 분께서는 복싱 폴리틱스를 잘 이해하고 계시기 때문에 다음 매치업을 많이 맞추시더라구요. 다른 예로는 정해진 승자 같은 것도 있겠네요. 오스카 델 라 호야는 펠릭스 스텀에게 경기 내적으로는 졌지만 외적으로는 거의 정해진 승자였습니다. 홉킨스와 붙기로 했었거든요.

    이변은-제 생각이지만-없습니다. 주다는 멘탈이 부족했었고, 타이슨은 연습을 하지 않았었죠. 타이슨을 이긴 더글라스는 무명이었지만, 그 경기에서만큼은 헤비급 누가 와도 더글라스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만큼 그 경기를 임했던 더글라스의 정신력은 타이슨의 기존 상대와는 다르게 강했었고, 계속해서 좋은 펀치를 맞추어서 결국은 낙아웃 시켯죠. 업셋은 정말 간간히 나오는 것이지만, 제 생각에 대체적으로 이변이란 없습니다. 이변의 이면에는 분명히 그런 이유가 있는 겁니다.
  • 붉은돼지 2011/03/13 21:59 # 삭제 답글

    NO WAY OUT, GAMBOA !!
  • 한빈翰彬 2011/03/14 08:14 #

    WAR DON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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