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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11. 18. 로이 존스 Jr vs 제임스 토니. 복싱 拳鬪



 복싱 팬들에게 이 둘은 무척 유명하지만 복싱 팬이 아닌 사람들에겐 둘 모두 생소한 이름들이다. 그나마 제임스 토니는 사람들이 알 만한데, 기형적으로 종합격투기 시장이 복싱 시장보다 큰 우리나라에서, 제임스 토니가 복싱을 때려치고 UFC로 전향한다는 소식이 인터넷 뉴스로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랜디 커투어와 제임스 토니가 경기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이노키와 알리의 경기처럼, 그건 더 많은 인기를 가지고 있는 복싱을 이용해 최대한 여론을 끌여보려는 종합격투기계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복싱 선수들은 종합격투기 선수들보다 인기가 더 많다.  

 토니는 UFC로 전향할 즈음에는 거의 퇴물에 가까운 복서였다. 입에선 버거킹과 시가가 떠나질 않아 몸은 뚱뚱해졌고, 체력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복서는 12라운드를 뛴다는 게 무리였다. 3라운드인 UFC가 토니에게는 더 편해보였을 지도 몰랐다.


 서브미션 기술이 없는 복서가 종합격투기 선수를 만나면 왜 안되는지를 토니는 보여주었다. 하긴 저 푸짐한 살 조금 떼어서 피좀 칠하면 어떠리. 커투어가 샤일록도 아닌데 저 살을 피 한 방울 없이 도려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요즘 벨트가 체급당 몇 갠데, 세계쳄피언이 대순가. 하지만 토니가 그저그런 선수였던 건 아니다. 

토니의 리즈시절


 커투어에게 토니가 쳐맞는 걸 보면서 복싱팬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울거나/웃거나. 토니가 저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 라는 마음으로 울거나, 꼴 좋다. 라는 마음으로 웃거나. 하지만 그들 모두 토니가 슈퍼복싱테크닉이라는 말 한 마디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토니는 일단 대단히 좋은 눈을 가졌다. 토니가 가진 가장 큰 재산을 들라고 한다면 그건 뭐라고 해도 눈이다. 펀치의 운동역학을 꿰고 있는 듯한 눈은 그가 중거리에서 절대적 우위를 갖게 만든다. 슬리핑과 더킹의 조합으로 토니는 심지어 훅만 가지고도 근거리에서 더 많이, 더 빠르게 상대방의 얼굴을 강타한다. 그러니까, 슈퍼복싱테크닉.

 토니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일단 중거리에서의 압도적인 카운터와 좋은 눈이라면, 토니가 가지고 있지 않은 무기는 들어가는 방법, 빠른 스텝이었다. 물론 그건 토니에게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토니는 중거리로 여유롭게 들어가 슬리핑+더킹으로 패거나, 들어오는 상대방을 슬리핑+더킹으로 카운터를 먹여주었다. 어느 복서들도 토니와 중거리 이상의 거리에서 상대하지 못했고, 숏펀치는, 상대방에게는 미안하지만 토니는 역시 좋은 인사이드 파이트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로이 존스 주니어와 만났을 때 토니는 단 하나의 무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스피드.


 로이 존스 주니어와 만났을 때 둘 모두 무패였다. 토니는 44승 2무, 로이 존스 주니어는 26승 무패. 로이 존스 주니어가 도전자, 토니는 챔피언이었다. 

 제임스 토니와 로이 존스 주니어 모두 엄청나게 좋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양쪽 다 자신의 눈에 확신이 있었고, 스피드 역시 내가 누구보다 빠르다고 자부했다. 둘 모두 상대방의 공격을 눈으로 먼저 캐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경기 초반에는 서로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제임스 토니는 슬리핑을 하면서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즉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이건 그 동안 토니에게 어떤 문제점도 가져다주지 않은 것이지만 로이 존스 주니어에게만은 달랐다. 애초부터 로이 존스 주니어는 중거리에서 싸울 마음이 없었다.

 로이 존스 주니어는 제임스 토니보다 분명히 더 사기유닛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건 그의 압도적인 피지컬 능력 때문이다. 그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레프트훅이다. 

 로이 존스 주니어의 레프트훅은 두 가지 의미에서 비상식적이다. 첫째, 로이 존스 주니어의 레프트훅은 상대방의 잽보다 빠르다. 둘째, 레프트훅은 원운동을 이용한 펀치이기 때문에 분명히 가속거리가 필요한데, 로이 존스 주니어는 앞손을 길게 뻗고도 몸을 이용해 레프트훅을 가속시킨다. 둘 다 일반 복서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로이 존스 주니어는 비유하자면, 단거리 경주에서 가장 빠른 치타같은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버나드 홉킨스는? 하이에나.) 상상을 초월한 연타의 스피드가 토니를 두들길 때 토니는 들어가지 못했고, 가드해야만 했다. 원래는 그 상황이었다면 상대방이 이미 중거리에 들어와 있을 것이고 토니는 가드를 한 다음 그냥 다시 먹여 주면 끝나는 문제였다. 하지만 로이 존스 주니어는 두들긴 다음에 다시 중거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한마디로 로이 존스 주니어는 중거리로 먼저 들어와서 토니를 패고 토니가 반응하기 전에 중거리에서 나가버린 것이다.

 토니 코너는 토니에게 로이 존스 주니어가 리드 펀치이자 세팅 펀치로 사용한 레프트훅을 타이밍을 캐치해 더킹하고 라이트로 되돌려 주라는 주문을 했지만 그건 철저히 오산이었다. 토니 진영은 로이가 빠지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알아서 인사이드 파이트로 들어올 것이라 생각한 듯 하지만 애초부터 로이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토니는 전혀 로이 존스 주니어에게 손조차 뻗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손은 뻗는데 닿지를 못했다.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깝거나. 게다가 로이가 기깔나게 깝치는 것을 보고 토니 역시 따라하다가 대관중 앞에서 다운을 당하고 말았다. 




 5라운드부터 토니는 적극적으로 들어갔지만 로이 존스 주니어는 백스텝 후 콤비네이션으로 토니를 잽싸게 갈긴 후 뒤로 물러나는 전략을 쓴다. 코너에 몰리면? 클린치한 다음에 빠져나가거나 사이드스텝으로 빠져나가면 된다. 분명히 토니는 중거리에서 좋은 카운터를 맞히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단지 더 적게 때리고 많이 맞았을 뿐이다. 복싱이란 룰 안에서 토니는 아무것도 하지를 못했다. 

 이 모든 걸 이렇게 만든 건 로이 존스 주니어가 토니보다 실력이 월등해서도, 아니면 컨디셔닝 때문도 아니다. 오로지 단 하나. Style makes a fight. 스타일 때문이다. 로이 존스 주니어에게는? 오히려 마이크 타이슨같은 선수가 더 위협적일 게 분명하다. 





 아래는 이 경기의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4라운드와 5라운드.





 토니의 첫 패배. 토니는 압도적인 점수차로 거의 셧아웃 당했다. 토니 인생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해보고 진 경기가 있을까.

 토니는 나쁜 복서가 아니다. 분명히 좋은 복서다. 더킹할 때 스텝을 밟지 못하는 것? 문제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애초부터 복싱의 상식을 무시한 사나이 앞에서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 경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두 가지;

 1.스타일이 경기를 결정한다.
 2. 다른 방면에서 아무리 앞선다 해도, 단 한 가지의 장점의 우위만으로도 모든 걸 뒤집을 수 있으며 따라서 항목별로 두 선수를 비교하는 것은 시뮬레이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덧글

  • ㅁㄴㅇㄹ 2011/02/15 19:17 # 삭제 답글

    바실리 지로프를 흠씬 혼내준거 외에도 80년대 중후반 모든 빅네임들이 설설 피하던 맥컬럼을 4차례나 압도하고, 슈퍼스타의 목전에 있던 욱일승천의 왼손잡이 레너드 마이클 넌을 떡실신시킨거 보면 토니도 진짜 난놈은 난놈이에요. 로이는 뭐...ㅋ
  • 한빈翰彬 2011/02/15 21:56 #

    하지만 버거킹 돼지 뚱땡이...

    둘 모두 레전드였죠. 로이는 토니 잡기 전에도 좋은 선수 많이 잡았었고... 이 당시 로이는 정복불능입니다. ㅎㅎ
  • BoxeR 2011/02/16 12:02 # 삭제 답글

    토니를 고인으로 만든 로이, 로이를 고인으로 만든 타버, 타버를 고인으로 만든 합킨신... 세상은 돌고 돈다
  • 한빈翰彬 2011/02/16 12:39 #

    ㅋㅋㅋㅋㅋㅋ 아 재밌습니다. 이것도 있겠네요. 모슬리를 잡은 코토, 코토를 잡은 마가리토, 마가리토를 잡은 모슬리.,.

    홉킨스가 타버를 잡을 때 별 것도 아닌 펀치에 다들 환호하더군요. 그만큼 타버가 밉상이었단 뜻이겠죠. ㅎㅎ
  • 행인7 2011/02/18 10:06 # 삭제 답글

    토니도 보통 인간의 피지컬을 한참 뛰어넘은 복서인데 로이는 그야말로 종 자체가 다르다는 걸 보여준 경기였죠. 로이의 캐리어상으로 이게 가장 큰 업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로이가 때리면 토니는 '아놔 방금 뭔 일이 일어난거야?' 하는 경기였죠.
  • 한빈翰彬 2011/02/19 11:02 #

    토니도 눈은 좋은데 그냥 아무것도 하지 못한 느낌. 스피드 앞에선 다른 장점들이 다 묻혀졌어요.
  • dfs 2011/11/12 17:40 # 삭제 답글

    제임스토니 홀리필드 관광시키는거 봤는데 대단하던데 역시 로이신
  • 한빈翰彬 2011/12/07 15:44 #

    RJJ가 홀리필드와도 붙었었나요? 기억에 없네요.
  • 2011/12/07 15:27 # 삭제 답글

    한빈님이 생각하기에는 복싱 역사를 통틀어 가장 천재적이고 사기유닛이라고 말할 선수는 누구인가요?
    로이? 베니테즈? 맥클레란? 그냥 뻘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한빈님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여 글을 올려봅니다.
  • 한빈翰彬 2011/12/07 15:46 #

    로이 존스와 마빈 헤글러... 이 둘입니다. 플로이드 메이웨더는 손 부상이 최대 약점이므로 뺏습니다.
  • Lights Out 2019/05/08 15:21 # 삭제

    Money May (손 문제 빼면), 윌리 펩, 두란, 퍼넬 휘티커, 로마첸코, 프린스 나심, RJJ, 와일더 (오른손 한방 만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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