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에 대한 뜬금없는 생각.


1
어떤 말은 그 말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 말이 사용되는 환경에 따라 의미를 가진다. 때문에 온전히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 소설 내에서의 발화는 어리둥절한 것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보통 소설가들은 그들의 세계관을 보통 우리가 사는 세계관과 일치시키기 마련이다. 그들의 말에 공감하고, 자신이 느낀 것을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2
세계관이 다르다는 것은 맨탈리티가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도道라는 말을 영어로 번역한다고 하자, road라고 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우리에게 道란 단순히 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맥락에서는 세상이 움직이는 이치로서, 혹은 사람이 '가야만 하는' 길(여기서의 길은 물론 걸어가는 길은 아닐 것이다)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道는 당위의 의미까지를 내포하고 있다. 때문에 道의 번역에는 TAO이다. (사족이지만, 프리조프 카프라의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의 원제는 '물리학의 도TAO OF PHYSICS'이다)

3
스티븐 킹은 글쓰기를 정신 감응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4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그러한 정신 감응이 이루어지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들의 세계관과 우리들의 세계관이 가지는 맨탈리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물을 보자. 우리에게 물은 흔히 생명, 재생의 의미를 가지지만, 여기에서의 물은 레콘이 두려워하는 그런 액체로서의 의미 또한 가진다. 하지만 눈물을 마시는 새를 처음 보는 독자가 그러한 맨탈리티를 미리 알 수는 없다.
예컨대, 다음 구절을 보자.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뭐? 무슨 제안인데?"

"대사원에서는 레콘 한 명을 필요로 합니다."

"레콘?"

"예. 그래서 대사원에서는 티나한 당신이 대사원을  위해 어떤 일을 해주길 바랍니다. 그것을 해주신다면 지금까지 빌려가신 돈을 모두 탕감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여섯 달 동안  필요하신 자금을 다시 빌려 드리겠습니다."
티나한과 롭스는 이 굉장한 조건에 그만 넋이  나간 듯했다. 롭스가 먼저 정신을 수습하고 말했다.

"그 일이라는 것이 뭡니까?"
"다시 인간이신가요? 죄송합니다만 그  일의 내용은 일을  할 분에게만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간이 넉  달 정도 필요할 테고,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롭스는 오레놀이 마지막에 끼워넣은 말이 티나한을 겨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험한 일이라고 했을 때 도망가는 레콘은 어디에도 없다. 과연 티나한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흥. 얼마나 위험하기에?"

하지만 오레놀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오레놀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티나한을 바라보았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물에  빠지는 것만큼이나 위험합니다."

티나한의 벼슬이 뻣뻣하게 곤두섰다.

처음 이 책을 보는 이가 이러한 내용을 이해할 리는 없다.

5
예로 물만을 들었지만 사실은 무척 많다. 예컨대 나늬(나는 이 단어의 의미를 끝까지 몰랐다), 혹은 딱정벌레(이게 사람보다 크다는 것을 왜 상상하지 못했을까)

6
이 글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그래서 적어도 두 번은 봐야 한다.

7
이영도가 이 글을 한번만 보고 때려칠 독자들을 포기하고 얻은 것은? 풍부한 환상성. 혹은 그들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상식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재미. 예컨대, 키타타 자보로와 케이건 드라카가 자보로 성벽에서 서로 아군을 인질로 잡은 것 같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그들 세계관에선 충분히 합리적인.

8
어떤 장점이 더 클까? 난 개인적으로 눈물을 마시는 새를 이영도 소설의 최고봉으로 꼽지만 선뜻 남에게 추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들이 처음에 나에게 보일 반응을 알기 때문에. 왜냐하면 나도 나에게 추천해준 친구에게 별걸 다 물어봤기 때문에.

9
눈물을 마시는 새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전혀 다른 세계관을 택함으로서 얻는 장점도 있지만, 그에 따라 전혀 글을 이해할 수 없는 독자들이 속출한다는 단점도 있기 때문이다. 문학적 보편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소설은 환상문학으로서의 특수성이 보편성에 가 닿기 위해 선행하는 이해를 가려버린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10
그런데 이걸로 뭔 감상을 쓰지.

by 한빈翰彬 | 2009/02/28 20:08 | 잡상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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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질겅질겅 at 2009/03/01 00:16
두번 안읽고 한번에 이해한 나는 뭐 외계인인가요? 뿌우 'ㅅ'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09/03/01 15:31
외계인외계인 'ㅅ'
Commented by 액시움 at 2009/03/01 00:58
그렇지만 그 정도의 세계관 차이는 국내 문학과 외국 문학 간에서도 볼 수 있지 않나요. 가령,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한국 사람과 호주 사람은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겠죠. 국내의 문학 작품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역사소설에 나오는 조선인들의 상식과 현대 한국인의 상식도 다를 테고요.

결국 글을 처음부터 꼼꼼하게 정독하느냐, 빠르게 읽고 재독하느냐의 차이라고 봅니다. 본문에서 인용된 해당 부분을 살펴보았는데, 처음 읽는 사람이라도 맥락을 잘 살피면 레콘에게 물이 어떤 존재인지, 나늬가 무엇인지, 딱정벌레의 크기가 어떤지쯤은 충분히 알 수 있겠더군요. 설명이 직접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고요.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09/03/01 15:35
그건 그 세계관 차이를 풍부히 활용하느냐 마느냐의 차이라고 봅니다.
외국문학은 처음부터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읽힐 것을 전제하고 쓰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자국의 독자들이 먼저죠. 때문에 그러한 세계관 차이를 우리는 느끼지만, 그 차이가 주는 어려움이 그렇게까진 크지 않지요. 왜냐하면 그 차이를 강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눈물을 마시는 새는 다릅니다. 그것은 이미 맨탈리티의 차이가 존재하는 세계를 강요하는 소설이죠. 눈물을 마시는 새는 한국인을 위해 쓰여진 소설이고, 그럼에도 맨탈리티의 차이가 존재하며, 그리고 그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소설이죠.
Commented by 프렐 at 2009/03/01 01:41
그렇게 따지면 일반적 판타지 역시 처음 판타지를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죠.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 보석을 좋아하는 드워프? 등등. 딱히 눈마새 시리즈에만 국한된 문제인 것은 아닌듯 싶습니다.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09/03/01 15:37
그런가요? 일반인들 역시 엘프나 드워프 정도는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건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 현실과의 차이 역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사화린 at 2009/03/01 03:11
확실히 그런 측면이 있을수도 있겠네요.

다만 이야기를 진행해가면서 그 세계관이 지닌 '문화'를
점차적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해나가고 있다는 느낌이라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받아들이는데는 크게 무리가 없었던걸로 기억되네요 ^^;


상징성으로 가득차고, 이전 내용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결말 때문에라도
결국 두 번 이상은 봐야 어느정도 소화가능한 책이긴합니다만,
워낙 이야기 자체가 저에게는 재밌게 다가와서, 두 번 이상 읽는 것도
큰 고역이 되거나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오히려 매 번 읽을때마다 조금씩조금씩 새로운 재미를 추가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저에게는 즐거움 그 자체였던 것 같네요 -_-ㅋ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09/03/01 15:37
확실히 그 점이 매력이죠. 재독하는 재미가 있다능.
Commented by 카바론 at 2009/03/01 08:43
눈마새 정도면 허용 범위임.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09/03/01 15:37
이영도 하악하악
Commented by 케이포룬 at 2009/03/01 16:00
...이런글을 적으시면 피마새부터 시작한 저는 뭐가되는건가요 ㄷㄷㄷ;
상상력의 확장이라는점에서 눈마새 피마새 시리즈의 환상성은 최고였습니다!
제 스스로 지닌 환상에대한 허용도가 높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그닥 특이하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저, '아, 천재구나.' 싶었다능;

.......그래도 남에게 저역시 선뜻 추천은 못하겠습니다(.....)
Commented by 무곡 at 2009/03/06 01:42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대한민국 표류기 렛츠리뷰 당첨되셨더군요. 축하드립니다~
저는 못받았네영 ㅠㅠ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09/03/07 01:23
앗, 그런 것에까지 신경써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사실 예전에 렛츠리뷰 당첨되어놓고 리뷰를 안 쓴 것이(;;)있어서 계속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었거든요. 아마, 이번에도 쓰지 않으면 특 블랙리스트에 등재될 것 같아요.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09/03/07 01:37
아, 랫츠리뷰 당첨비결은 이글루나님께 아첨하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9/06/04 14:27
공감가는 부분이 많기에 지나가다 몇 자 남기고 갑니다. 일단 눈마새 세계관에 익숙해지면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만끽할 수 있지만 처음 읽을 때는 저도 난감하더라고요. 두번 이상 읽고 보면 처음 읽었을 때 낯선 소재들에 허덕이다가 많은 것들을 놓쳤었구나.. 할 정도였습니다'-' 눈마새 보다 더 심했던 건 폴라리스 랩소디였고요.

위에서 프렐님이 드워프와 엘프의 예를 들며 눈마새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드워프와 엘프와 같은 서구식 판타지와 관련 소재들은 반지의 제왕 이전 부터 장구한 세월 동안 신화와 전설에서 다뤄진 보편적인 존재들이 되었지요. 프렐님도 이미 엘프와 드워프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일반" 판타지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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