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야구팬을 위한) 야구를 관전하는 포인트.




2008년은 프로야구 관중이 최초로 500만을 넘어선 해다. 동시에 야구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하지만 처음 가는 야구팬들은 야구의 응원이나 그 흥겨운 분위기에 매력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만 그걸로 버틸 수는 없다. 스펙터클이라는 면에서 야구는 축구나 농구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야구 경기를 볼 때 무엇에 재미를 붙여야 한다는 말인가? 이 글은 그런 궁금증에서부터 출발한다.


야구는 보는 자들에게도 선수들과 똑같은 긴장감을 안겨 준다는 점에 있어서 축구나 농구 같은 다른 스포츠보다 훨씬 우위에 서 있다. 축구나 농구와 같은, 순수하게 선수들의 기교와 움직임에 감탄하고 흥분하는 스포츠와는 달리-물론 야구가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투수, 혹은 포수, 그리고 혹은 감독이 되어 경기를 관전할 수 있다는 느낌을 야구는 보는 자들에게 제공한다. 굳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수싸움'을 지켜보는 묘미이면서 동시에 극한의 육체를 보여주는 운동이다.

김병현


축구나 농구는 우리들이 그걸 보기는 하지만 우리가 직접 선수들이 될 수는 없다. 선수들은 우리가 사고하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공을 돌리고 슛을 한다. 우리의 사고가 공의 궤적을 좇아 이리저리 흔들릴 때쯤이면, 선수들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야구는 그렇지 않다. 야구는 일 구(球), 일 구를 느긋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투수의 공이 포수의 미트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긴장감에 가득 차 지켜보는 스포츠다. 그리고 매 던지는 공마다 계속해서 상황이 바뀌면서 일어나는 수싸움을 즐기는 스포츠이다.

수싸움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야구의 묘미가 있다. 내가 이런 '수싸움'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 그것은 두 가지 전제를 함축한다. 첫째, 그 수싸움의 대상이 누구인가. 둘째, 그 수싸움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을 수싸움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 수싸움은 한 곳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에서 벌어진다. 가장 첫번째 층위는 물론 투수와 타자와의 대결이다.

야구를 처음 보는 사람이 타자와 투수와의 대결에서 가장 처음으로 수싸움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볼카운트이다. 스트라이크와 볼의 숫자에 따라 그는 어느 누구가 더 유리한지를 알게 된다. 그러나 야구를 볼 때는 그 볼카운트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볼카운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바라보아야 한다. 즉, 풀카운트(2-3)을,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볼을 세게를 연달아 내주었는가, 혹은 쓰리볼 이후에 투스트라이크를 꽂아내었는가에 따라 마지막 공의 성격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그리고 같은 풀 카운트라도 타자가 연속해서 파울을 쳐내 11구째를 맞이하는 투수와, 파울 두개에 볼 세개, 그리고 6구째의 공을 던지는 투수의 심정 역시 판이할 것이다. 때문에 야구를 관전하는 초보 야구팬들은 자신이 직접 투수의 마음이 되어, 볼카운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공두오의 악몽

용규매직


여기에서 좀 더 많은 경기를 시청한 팬들이라면 그 타자와 투수에 대해서도 해박하여, 그 투수는 어떤 구질을 주무기로 삼는지. 그 투수의 스타일은 어떤 것이라는지. 이 타자는 어떤 공을 선호하고, 어떤 코스에 약한지. 그리고 더 해박한 야구팬은 그 투수와 타자의 상대전적이 어떠한지까지를 알고 경기를 보게 된다.

해박한 팬이 되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면 주의깊은 팬이 되는 것도 괜찮다. 저 투수는 지금까지 몇 개의 공을 던졌는가? 저 투수의 지금 구위는 어떠한가? 이 투수는 지금 이 타자와 몇 번째 맞상대했는가? 전 타석에서 이 타자는 어땠는가? 현재 몇 명이 루에 진루해 있고, 현재 아웃카운트가 몇인가? 이 점수차에, 이 아웃카운트라면 어떤 작전을 사용할 수 있는가?


훗 미래를 예측할 수 있군



그 다음의 수싸움으로는 잘 드러나진 않지만 타자와 야수간의 수싸움이 있다. 이 타자는 어떤 스윙을 주로 하는지를 아는 야수는 수비 시프트를 바꿈으로써 타자를 죽일 확률을 좀 더 늘리려고 시도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팬들이 알아차리기는 힘들지만. 그것이 나타났을 때 비로소 탄성을 지를 수 있다. 2008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타선의 핵 김현수는 SK Wyverns의 수비시프트에 철저히 박살났다. 이것은 야수와 타자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감독과 타자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 다음 살펴볼 만한 싸움으로는 수비와 주루의 싸움이 있다. 볼카운트가 몇인 상황에서 이 선수는 도루를 시도하는가? 혹은 히트 앤 런을 사용할 만한 상황인가? 여기에서 무리해 한 루를 더 진루한다면, 투수에게 더욱 더 큰 압박감을 줄 수 있는가? 그 한 루의 진루에서 죽을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이런 것들을 알아차리는 팬들은 투수와 타자와의 수싸움을 지켜보면서, 진루해 있는 주자가 언제 뛸지를 지켜보는 것 또한 즐길 수 있다.

아쫌살려줘



그리고 마지막 수싸움으로 감독간의 수싸움이 있다. 지금 이 타자는 저쪽 팀 투수에게 무척 약한데 대타를 써야 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이 타자의 수비능력을 포기할 정도로 지금 상황이 급한가? 투수교체를 지금 해야 하는가? 지금 불펜에 가용할 수 있는 투수전력은 누구가 있는가? 과연 이 점수차에서 더욱 더 투수를 투입해야 하는가? 감독들은 자신이 내보낸 투수가 난타당할 때마다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던지기 마련이다. 



감독간의 싸움


하지만 동시에 경기를 보는 팬들 역시 감독의 입장과 마찬가지에 서서, 마치 자신이 감독인 양 지금 투수를 바꿔야 한다고 애타하고, 안 바꿨다가 경기를 내주면 그걸 두고두고 이야기하고, 그런 상황이 또 오면 역시 또 소리친다. 이것은 그 어느 스포츠에서도 찾을 수 있는 야구만의 묘미다. 누구도 축구 경기에서 감독을 대신해 아, 그때 이 선수로 교체했으면 이겼을 텐데. 하고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스포츠가 야구다. 야구는 우리 모두가 선수. 코치. 감독이 되게 해 준다.


진정한팬의자세-잠실도인


이 모든 수싸움의 특징은 과거가 끊임없이 현재로 피드백된다는 것이다. 전 타석에서 이 타자가 이 투수와 몇구째까지 상대했지(이 타자가 이 투수의 공을 몇 개나 보고 타석에 또 들어섰지)? 부터 시작해서. 어제 투수는 누가 나왔고, 그때 그녀석의 구위는 어땠지? 까지. 더 나아가 이 감독의 스타일이라면 여기에서 번트를 시도해 점수차를 더 늘려 놓으려 시도할 걸. 이라는 데에까지 나아가게 된다. 야구, 특히 126경기나 되는 페넌트레이스를 완주하는 와중에는 이러한 과거로의 피드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만화 <ONE OUTS>에선 그것을 이런 명쾌한 말로 표현하고 있다.

"져라...토너먼트와 리그전이 다른 것은 리그전에서는 패배가 허용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기느냐'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최대한 잘 죽어 다음 수싸움을 대비하는 자세야말로 진정한 야구팬이 (시즌 중에)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자 다음 수싸움을 최선의 패를 가지고 맞이하는 노력이 아닐까?


예쁘게죽어요


 
결론은 승리의 SK

by 한빈翰彬 | 2009/02/04 13:31 | 야구이야기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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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09/02/04 13:54
결론이 무섭습니다.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09/02/04 13:58
팬심이죠. ㅎㅎ
Commented by 안경소녀교단 at 2009/02/04 14:45
결론이 매우 바람직하군요.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09/02/07 01:01
SK팬이신가보군요. 반갑습니다. 주안에 살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용두 at 2009/02/04 15:54
1년에 팀당 100경기 넘게하는 프로스포츠는 야구밖에 없지요 허허

그게 야구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09/02/07 01:02
뭐, 언제라도 한다는 그런 믿음이 있지요. 그러나 지금은 겨울이라는...
Commented by 야구가 좋아요 at 2009/02/04 17:23
야구에 푹 빠지니까 다른 스포츠는 정말 따분해지더군요..찬스도 위기도 금방금방 지나가고 골도 순식간에 들어가버니 도무지 야구와 같은 긴장의 고조가 느껴지지 않더군요.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09/02/07 11:11
찬스나 위기라는 것을 관중이 깨달을 수 있는 경기가 야구 외에는 드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뉴비틀타고슝 at 2009/02/04 21:27
야구 이런 매력이 숨어있었군요.
발담근지 얼마 안 되는 꼬꼬마 팬(..)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09/02/07 11:12
하하, 본 글에서 중점으로 살펴보아야 할 내용은 물음 부분입니다. 그건 하나하나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것이고, 많이 보면서 깨우쳐나갈 수밖엔 없는 거죠.
Commented by 무곡 at 2009/02/05 08:29
음, 누가 이러더군요. 재미있는 야구경기는 재미있는 축구경기보다 재미있고, 재미없는 야구경기는 재미없는 축구경기보다 재미없다...라나요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09/02/07 11:14
재미없는 야구경기는 정말 재미없지요. 그런데 저는 재미없는 축구경기는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잘 알려진 야구 명언 중에 이런 게 있지요. "내가 가장 기쁠 때는 야구경기에서 승리할 때이고 두번째로 기쁠 때는 야구경기에서 패배했을 때이다." 물론 승패가 재미와는 꼭 상관있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Commented at 2009/02/27 22:5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09/02/28 01:35
가끔씩은 물병을 화염병으로 바꿔버리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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