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月 27日



 버스를 탔다. 창문을 살짝 열고, 창밖의 경치를 아무런 생각 없이 보고 있는데, 옆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듣고 있는 이어폰의 음량을 뚫고 도달할 정도로 커다란 소리였다. 좋아, 이렇게까지 하겠단 말이지. 어디 한 번 돌아봐주겠어. 돌아보니, 내 눈에는,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며 두 눈을 액정화면에 몰입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들려온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없어진 지 한 3년 정도 되었는데, 3년 전, 우리 누님이 고3된 기념으로 아버지가 어머니의 사주를 받고 야구배트로 친히 브라운관을 내리치셨다. 누나가 대학교에 들어간 지도 꽤 되었는데, 불만의 목소리는 산발적으로 터져나올 뿐, 한 번도 응집된 결집체로서 같은 목소리로 그 현실을 성토한 적이 없다. 부모님과 나는 TV가 없으니 오히려 편하다는 입장이고, 누나들은 꾸준히 TV없는 현실에 불만을 품어왔지만, 요즈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 진압과정의 한가운데에 바로 이 DMB가 있다.

 나는 보통 누나들에게 DMB로 무언가를 볼 거면, 조용히 보라고 주장하는 편에 더 가깝다. 보는 것은 당신 자유이니, 나도 별 말은 하지 않겠다. 대신 나도 드라마를 보고 듣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당신의 드라마를 보기 위해 장신의 자유를 존중받길 원한다면, 나도 이 적막을 잃어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내 자유를 존중해달라. 이렇게 말하는 편이다.(그리고 맞는다. 감히 반말을 했기 때문에) 

 나는 침묵을 사랑한다. 서로간에 말이 오가지 않는 적막 속에서 소리없는 언어가 더욱 잘 오고갈 수 있음을 믿는다. 그런 나에게 길거리의 소리 광고는 커다란 폭격이다. 두 눈이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귀야 그렇지 못하니 짜증낼 수밖에. 듣기싫은 소음들이 거리에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나는 이어폰을 낀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모순이다. Erik Satie의 Gnossienne같은 침묵의 음악을 가지고는 도저히 그 청각적 폭력을 견딜 수 없다. 결국 내 선택은 언제나 메탈로 간다. 그러나 그것 역시 시끄러움으로는 길거리의 광고에 못하지 않다. 억지로라도 록에 취미를 붙인 것은 어떤 의미로는 행운이다.

 이봐, 당신 밀이지. 나는 당장 당신이 그 같잖은 DMB를 닫아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이야 그 드라마가 마냥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질질짜거나 쓸데없이 낄낄거리게 하는 드라마는 딱 질색이야. 그리고 별로 재미붙이고 싶지도 않아. 그런 이유로 나는 당신이 지금 당장 DMB를 닫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때.

 하지만 들릴 리 없다. 남자는 여전히 드라마에 몰입해 있고, 소리는 여전히 이어폰을 박살내고, 성질급한 내 상상은 벌써 그놈을 향해 달려가 목을 찍고 허리를 분지른 다음 985 헥토파스칼 킥으로 그놈을 우주 저편으로 날려버린다.

 

by 한빈翰彬 | 2008/04/09 21:49 | 일기장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aquavitae.egloos.com/tb/159780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