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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나무 숲』 감상 평 評

얼음나무 숲: 순수와 절망의 협주곡.

 

0. 들어가기 전에.

 

『얼음나무 숲』이라는 책을 이야기하기 전에, 저는 먼저 백白색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굳이 먼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이 그려내고 있는 지독한 순수의 뒤에는 한결같이 이 백색이 자리잡고 있다는 믿음에서입니다. 소설에서의 표현을 빌자면 <이 내용 안에서 드러나는 모든 공포와 순수의 처음과 끝에는, 언제나 백색이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얼음나무 숲」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 가장 주가 되는 이미지는 다름 아닌 이 백색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백색은 저에게, 티끌 한 점 없는 새하얗고 따뜻한 순수로 다가오는가 하면, 때로는 텅 비어버린 공허가 주는 무無의 공포로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율배반(aporiā)적인 의미의 이미지로서의 백색은, <여전히 겨울인 이곳, 에단에서>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과 교묘하게 합치되어 차갑다는 인상을 함께 주게 됩니다. 이러한 이미지—겨울과, 백색과, 차가움—를 모두 갖춘 사물은 눈雪이라는 형태로서 완성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감상의 전반부의 대부분은, 이 흰색과 눈이라는 이 이미지가, 지면 상에서 어떠한 모습을 띄고, 어떠한 느낌으로 표출되는가——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이 백색은 또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보면, 신과 악마의 대화 장면이 나옵니다. 인간 파우스트를 꼬여 내는 내기를 건 메피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며 그 다음에 신을 비웃어주겠다고 호언하자 신은 조용히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이긴 다음에라도 언제든지 찾아오너라.

나는 너희 같은 무리를 미워한 적이 없느니

부정(否定)을 일삼는 정령들 중에서도

너희 같은 익살꾼들은 조금도 짐스럽지 않구나.

인간의 활동력은 너무 쉽게 느슨해져서,

무조건 위기를 좋아하니,

내 그들에게 적당한 친구를 붙여주고자 함이라.

그들을 자극하고 일깨우도록 악마의 역할을 다하거라—>

정서웅 역, 「파우스트」, 민음사, 1999, p.24-25

 

선善의 극한을 보여주는 신은 결코 악마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선善은 악惡이 존재해야만 선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신이 잘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것은 이 소설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신이 선으로서 존재하고, 봄이 따뜻함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악마와 겨울이 필요하듯이, 이 백색이 순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비되는 대척점이 필요하겠지요. 저는 이 극점에 절망을 두고 또한 감상을 전개해 나가려고 합니다.

 

 

1. 케릭터의 색채. 그리고 순수.

 

백색에 관한 이야기를 했으니, 시작도 백색으로 해야겠지요. 이 책에서 가장 백색의 이미지, 순수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인물은 주인공인 고요 드 모르페입니다. 가장 순수한 자, 그리고 가장 순수하기에 오직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바옐의 유일한 청중이 되는 것에만 집착하는 자. 그렇기에 그는 백색입니다. 오직 하나만을 원하기에 티끌없고, 끝없는 순수로서 그것만을 바라보기에 하얗습니다. 그것은 따스한 눈처럼, 매우 단순한 희구만을 갖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고요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티 없는 순수입니다.

 

그런 그의 이미지는 예언가 키세와의 대화에서 잘 드러납니다. 키세는 고요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슬픔이 눈이 되어 에단에 쌓이는 그날, 많은 사람들이 우리로부터 헤어질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괜찮아요. 견딜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은 눈물이 많은 사람이니까.>

하지은 작, 「얼음나무 숲」, 로크미디어, 2008, p.87 5-7n

 

저는 처음 백색의 이율배반에 대해서, 백색의 순수가 가져다주는 따뜻함과 공허가 가져다주는 공포에 관해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백색의 따뜻함이 고요 드 모르페라면, 백색의 차가움에는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얼음나무 숲>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얼음나무 숲의 주인인 듀드로는. 그 역시 아버지—바옐—에 대한 순수한 동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 동경을 위해서 살인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백색의 잔혹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차가움을 걷어 내는 것이 이 백색과 대비되는 검정— 바옐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저는 또한 백색이 백색이기 위해서는, 검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색채는 더럽혀진 자, 너무 일찍 더러움을 알게 된 자*, 순수를 갈망하지만 또한 그 순수로부터 도피하는 자인 아나토제 바옐로서 형상화됩니다. 바옐은 천재적인 기교와, 모든 사람들에게서 축복받는 악마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그가 그렇게 소망하던 단 하나의 청중을 찾아, 끝없이 희구하고, 끝없이 절망하는 어둠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의 끝없는 절망은 주위에서 그의 절망을 지켜보며 자신이 그 청중이 될 수 없음을 순수하게 안타까워하는 고요의 순수함을 더욱 부각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토록 작가는 두 캐릭터의 선명한 대비를 통해, 순수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한 아나토제 바옐의 순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또한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에서의 기표라는 인물이, 어떻게 보면 이 바옐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순수한 절망, 그 색채는 너무나도 어둡지만, 그 어둠이 너무나도 선명하기에 또한 순수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바옐이 켜는 바이올린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여명黎明입니다. 이영도의 유명한 소설 『폴라리스 랩소디』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모든 밤은 빛나는 여명을 약속하지, 가장 어두워 새벽을 잉태할 만한 밤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그렇습니다. 여명이 오기 바로 직전엔 가장 어두운 밤이 있습니다. 저에게 이 바옐의 이미지는, 너무 어두워서 지독하게 순수한 밤, 칠야漆夜와도 같았다고 말하겠습니다. 칠흑, 그것은 검기 때문에 모두를 물들어버리지만, 그만큼 너무도 고혹적이고 매력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입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 바옐이야말로 얼음나무 숲에서 가장 끌리는 인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 구조에 대해서.

 

그렇다면 이 소설의 구조는 어떠합니까? 이 소설의 구조는,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음악의 구성을 띄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음악을 따온 구성은 독특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찾아보기 힘든 것은 아닙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시인인 T. S. 엘리엇의 작품들만 해도, 『대성당의 살인(Murder in the Cathedral)』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의 주제와 구조와의 유사성이,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과 『네 개의 사중주(Four Quartets)』에서는 베토벤의 후기음악, 특히 작품번호 132, A단조와의 유사성이,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는, hkrmsj의 오페라, 리차드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음시조(tone poems; symphonic poem),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음악의 주제와 구조와의 유사성이 주장되기도 합니다.**

물론 앞서 말한 작품들은 시이니, 소설보다 악상의 구조를 갖추기가 보다 쉽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소설에서 구조를 음악과 일치시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또 다른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내용의 전개가 음악 형식, 특히 소나타와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얼음나무 숲』의 내용 전개는 독특합니다. 에피소드의 나열로 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서사적이고, 그 흐름이 마지막에 급격히 이어진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소나타의 구조, 즉 1부와 2부로 나뉘어서 1부에서는 주제를 설정하고[주제설정부(exposition)], 2부에서는 내용을 전개하고, 절정의 테마를 재현해내는[전개부(development), 재현부(recapitulation)] 것이 이 소설의 내용 전개 방식과 유사하다는 것은, 저에게 ‘음악’ 이라는 소재를 다룬다는 점과 어우러져 더욱 더 흥미로운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각각의 부분에서, 케릭터는 각각의 색채를 띈 채, 여러 부분에서 기묘하게 어울립니다. 음악적인 구성과 함께, 색채의 뚜렷한 대비는 이 소설의 마술적인 느낌을 더욱 강조하며, 커피 프림 같은 부드러운 어우러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고요 드 모르페와 <얼음나무 숲>의 익세 듀드로만의 어우러짐은 글에 나타나 있지 않은데, 둘 모두 한 가지를 향한 순수라는 점에서 차이가 부각되지 않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흰색은 각각이 있어 보았자, 구분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3. 눈雪과 순수에 대해서.

이것 말고도 저는 얼음나무 숲의 눈雪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티없는 순수, 하지만 눈은 녹아내립니다. 고요의 순수 역시 녹아내립니다. 고요의 순수를 지키기 위해 키세가 희생했을 때, 그리고 그 희생을 외면하고 얼음나무 숲을 달려 나오는 순간 고요는 공포를 느낍니다. 그건 순수를 잃은 자기 자신의 대한 공포일까요, 본문의 내용을 잠시 빌려보겠습니다.

 

<“나는 자네와는 달라! 나는 평범해. 아무 힘도 없다고! 얼음나무 숲을 연 것은 자네지 내가 아니야. 그 숲의 괴물인지 뭔지를 깨운 것도 내가 아니라고! 그런데 왜 키세가 저기 나 대신 매달려 있는 거야? 트리스탄도 자네도 아닌 나 대신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워!”

“그래 믿지 마.”

바옐은 내 멱살을 잡고 다시 일으켰다.

“믿지 말라고 모두 잊어. 닥치고 이대로 돌아가서, 다신 이곳에 오지 않는 거야. 트리스탄에게도 절대 말해선 안 돼. 그리고 내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연주하는 걸세.”

…중략…

그러다가 문득, 바람이 불었다. 위이이잉, 워어어어―. 바람은 흡사 누군가의 괴로운 울부짖음처럼 들렸다. 스스스스…… 잎사귀들이 마찰하며 웃는 소리가 이어졌다. 순간 발밑에서 머리끝까지 소름이 쫙 돋았다.

“기, 기다려! 바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신없이 바옐을 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원래 내가 하고 있어야 할 모습이었다.

나는 내가 외면한 그녀처럼 나무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늘어진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할퀴고 튀어나온 나무뿌리들이 발목을 붙잡았다. 그래도 나는 미친 듯이 달렸다.

공포 때문이라는 달콤한 허울을 쓴, 가증스러운 한밤중의 도피. 그러나 정작 나는 죄의식으로부터, 양심으로부터, 그리고 나다웠던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중략…“타게”

우리는 다시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 말없이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서로에게 불쾌한 그물을 씌운 공범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 느끼고 있었다.

그래. 우리는 진실을 외면했고 입을 닫았으며, 그로서 비참한 탈주는 시작되었다.

마술사가 그토록 찬미해 마지않았던 순수.

그것은 그날 이후로 더 이상 내 안에 없었다.>

하지은, 같은 책, p.295-297

 

바옐과 함께 한 고요의 키세로부터의 도피는 얼음나무 숲, 백색 공포로부터의 도피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마술사가 그토록 찬미해 마지않았던’ 순수는 녹아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침묵과 은폐는 바옐과 고요가 서로에게 씌운 공범자라는 멍에입니다. 그리고 그건 땅에 닿은 눈의 운명이 남긴 조그만 눈자욱이기도 합니다. 땅을 희구하여 땅으로 달려든 눈의 운명은 두 가지입니다. 더렵혀지거나, 녹아내리지요.

 

녹아내려진 순수가 다시 흰 눈으로서 얼어붙을 때는 듀드로와의 만남 이후입니다. 그때부터 다시 고요는 바옐을 향한 희구를 계속하며 되살아난 순수의 모습을 보여주지요. 그걸 지켜보는 것은 즐겁습니다. 깨끗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에 즐겁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밝으니까요. 고요 드 모르페의 진실된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4. 표현력에 대해서.

 

1) 단어의 적절성.

 

개인적으로 귀스타프 플로베르의 일물일용설一物一用說―한 문장에 어울리는 단어는 하나뿐이라는 이론―을 꽤나 신봉하는 편이기 때문에, 저는 소설의 텍스트를 볼 때, 그 문장과 단어를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또한 이 글 역시 마찬가지로, 텍스트 속에서의 단어사용이 상당히 신경 쓰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난 결과, 저는 경이를 느낄 수밖엔 없었습니다.

 

저는 원래 단어의 이미지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선율’ 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너무 프랑스 상징주의적인 생각일런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선율’이 ‘선’ 이 얇으면서 진한 느낌을, ‘율’ 의 발음이 맑고 아치있게 울리지만, 'ㄹ'이 가져다주는 정식화定式化의 운치를 동시에 가져다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전율’ 이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율’ 의 느낌과 ‘선율’ 에서의 ‘율’ 의 느낌은 저에겐 전혀 다른 것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소설에서 느끼는 놀라움은 바로 이런 종류의 것입니다. 장면의 분위기와 교묘하게 합치되는 단어의 선율이 저에게 심장에서부터 섬뜩하니 치밀어 오르는 전율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한 가지만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 부분이 있었지만 제 생각에 가장 단어의 적절한 사용이 장면을 제 마음 속으로 틀어박히도록 만드는 부분은 이 부분이 최고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활이 현에 닿았다.

그 벼락같은 절정의 순간, 관중은 참았던 숨을 내쉬었고 동시에 여명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카논 홀의 벽을 타고 울리는 여명의 음색은 지난번 숲에서 들었을 때보다도 전율적이었다. 음의 아름다움을 최대한으로 살리기 위해 치밀하게 건축된 홀의 구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바옐은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격정적으로 연주했다. 마치 일생일대의 적을 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매섭게 몰아치는 듯한 활의 움직임은 타오르는 분노인가 하면 엄한 절제가 느껴졌고, 경멸과 증오가 뒤섞여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완벽함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은, 같은 책, p.115, 9-18n

 

(나에게 이 장면을 저렇게 간결하게 서술하라고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아마 나라면 한 세 페이지는 잡아먹을 것이다.)

 

저는 이 부분에서 짧은 언급임에도 단어의 놀라운 사용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제일 놀란 것은 이 간결한 언급이 정말이지 효과적으로 장면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옐의 고정된, 그러면서도 불타는 듯한 눈빛, 정열적인 연주, 그러면서도 그 음률 속에 잠재되어 있는 냉폭한 차가움……저에게 이 소설의 장면 장면이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데 가장 큰 일조를 한 것은 다름 아닌 이 단어의 효과적 사용이었습니다. 작가의 각고의 노력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문장력.

 

사실 인터넷 연재 때만 해도, 작가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출간한 책을 막 잡고 다시 읽어나가니 확연히 드러나더군요.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가슴을 저미는.

섬세한 문체는 제가 가장 감탄한 부분 중에 하나입니다. 단어의 사용이 작가의 노력을 느끼게 해주었다면, 문체는 작가의 감성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부분입니다.

 

사실 같은 뜻을 가진 문장임에도, 단어의 적절한 사용과 문장의 적절한 구성에 따라, 문장이 주는 이미지는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만일 ‘새가 새파란 하늘을 난다.’ 라는 문장이 있다고 합시다. 이 문장을 쓸 때, 단순히 이와 같이 쓰지 않고 ‘하늘, 그 파아란 속에 새가 박혀 있었다.’ 라든지, 혹은, ‘날개짓— 그 단순한 동작은 새로부터, 그리고 새파란 하늘 속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진 쉽습니다. 하지만 그걸 장면에 맞는 구성으로 적어내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습니다. 제가 감탄하는 것은 흔들림 없는 문체로 처음부터 끝까지 분위기를 유지해가며 장면의 맛을 기가 막히게 살려내는 작가의 솜씨입니다. 그건 정말 글을 쓸 때 흔들림 없이 글에만 집중해야만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소설 내에서도 계속해서 분위기가 흔들려 정신없는 최근의 글들에 비교해 보면, 이 『얼음나무 숲』이 그려내는 분위기는 발군입니다.

그 중의 한 부분을 소개해 봅니다.

 

<바옐이 낸 소리는 C, 가장 기본이 되는 음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단순한 음처럼 들리지 않았다. 마치, 울음소리 같았다. 30년 만에 목소리를 토해 내는 기쁨과 설움이 합쳐진 듯한, 환희와 분노에 찬 소리.>

하지은, 같은 책, p.99, 17-21n

 

3) 환상성.

 

팬터지 소설이니, 얼마간의 환상성은 필수겠지요. 하지만 같은 팬터지 소설의 ‘범주’(사실 저는 이 범주範疇라는 것이 그 범주 안의 것들을 마구 정식화定式化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에 속하는 다른 소설과는 달리, 이 [얼음나무 숲]은 독특한 환상을 창조해냅니다. 얼음나무 숲과 같은 초현실적인 장면을 당연하다는 듯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집어넣는 솜씨는 이 소설의 환상성을 느끼게 하는 데 충분합니다.

 

얼음나무 숲에 들어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여명을 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부재(absence)되어 있는 설명은, 그 설명을 창조해내는 것을 독자의 몫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상상할 뿐입니다. <얼음나무 숲>은 현실과 분리된 장소로서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그 장소는 비실재적이고, 초현실적인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환상의 세계 말입니다.

 

여타 다른 팬터지 소설은 분명히 현실 세계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을 환상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냅니다. 마법이 그렇고, 오러가 그렇습니다. 나름대로의 체계를 가지고 말입니다. 하지만 『얼음나무 숲』에서의 환상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단지 보여줄 뿐입니다. 바옐이 여명의 현을 켜고, 당연하다는 듯이 눈을 뜨면, 어느새 새로운 환상계가 펼쳐집니다. 차가운 얼음이 지면을 뚫고 나와 만들어진…<얼음나무 숲>의 세계가.

 

 

5. 끝으로 -餘談-

 

이 비평글을 쓰기 전까지, 꽤나 고심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분석이야 감상이야? 라는 생각을 지녔었고, 그러다 하리야 헌쳐크 님의 글을 본 뒤로는, 분석이 아닌 비평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하리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비평과 감상은 뚜렷이 구분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저도 지금 이 글을 다 써놓고는 이게 정확히 무엇을 지적하고 싶은 글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요컨대, 이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모든 느낌과, 알고 있는 사실들이 떠오른 것을 이리저리 뚝딱뚝딱 고쳐주고 이어줘서 만들어낸 글이 이 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실 그렇게 신경 쓰면서 보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제가 이렇게 제멋대로 분석글을 써놓고서도, 작가님의 의도가 정말 이것이었는지 확신하진 못하니까요. 단지 저는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받아들였고, 이런 이미지를 가지면 이렇게 해석되기도 하는구나- 를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단 길기는 하지만, 결국 감상평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어느 날,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한 번 펼쳐보고 싶은 글이라고. 그리고 정말 재미있었다고.

 

하지은 작가님 수고하셨습니다. ^^ 다음 글 출판하시면, 전혀 거리낌없이 지갑을 열 겁니다.

 

 

 

 

註.

 

*하지은, 같은 책, p.265, 10-22

**Nicolosi 196, 한국 T. S. 엘리엇학회 편, <T. S. 엘리엇 詩>, 동인, 2006, p222-223

 

 

 

p.s. 당초 이 글은 『얼음나무 숲』 출간 기념 이벤트에 응모할 계획을 지니고 쓰기 시작한 글입니다. 음, 그 소식을 접하고, 감상글을 쓰고 싶다. 라고 생각한 것이 2월 3일이었습니다. 그 다음 이 이벤트의 기한을 나태한악마님께 쪽지로 물어보았죠.

 

보낸이 나태한악마

보낸시각 2008년 02월 04일 13시 45분

제목 안녕하세요.

기한은 2월 25일까지인가로... 알고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이나 네이버 책, 네이버 개인 블로그에도 가능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로크미디어 배너 클릭하시면 카페로 가니까 거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

***

 

저는 그걸 머릿속에 꼭꼭 새겨두고,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글을 완성해 나가기 시작했죠. 결국 오늘 완성시켰습니다. 하지만 네이버 노블레스 카페에 이벤트를 응모하려고 갔습니다. 하지만 카페 메인에 있는 공지는 “이벤트 끝났습니다” ……

 

2월 25일이라면서요~ 하지은님!! 2월 24일에 글을 완성한 저같은 사람은 우째란 말입니까 ㅠㅠ 책임지세요~!! 우아아아앙~ 내 닌텐도~~

 

 

 

p.s. 2. 이번에 노블레스 클럽에서 출판할 『볼테르의 시간』도 기대중입니다. 강다임님 파이팅! 『사카이아의 사형수』를 너무 재미있게 본 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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