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08일
역사를 공부할 때.
역사를 공부할 때: 내가 세계사를 바꾼 사건 OO가지…류의 책을 싫어하는 이유.
나는 역사가, 사건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사진첩의 역사가 아니라, 흐름들로 구성된 영화와도 같은 역사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세계사를 뒤바꾼 사건 OO가지…" 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 때문에, 위와 같은 제목의 책들은 역사의 파악에 있어서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오류는 역사의 인과 관계 파악에서의 오류입니다. 이 사건들이 세계사의 흐름을 뒤바꾼 것이 아니라, 그 흐름들이 세계사에서의 사건을 만들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떤 커다란 사건을 촉발시켰던 도화선 같은 사건이 없었더라도, 그 커다란 사건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과연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의 그 저주받을 총탄이 없었다면 제 1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회의적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당시 거대 식민지를 움켜쥐고 막대한 재화와 부를 축적했던 구체제 거대 열강과, 새롭게 뛰어든 신 열강 사이에서의 대립과 마찰은 결국 전쟁이라는 형태로 촉발될 것이었습니다. 19세기 당시, 정치‧ 경제에서의 커다란 두 가지 흐름—정치적으로는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로 대표되는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들이 열강 사이에서의 전쟁을 필연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처를 살해한 테러리즘이 없었다 할지라도, 연합국과 동맹국 사이에서의 대전쟁(Great War)은 발발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는 이 흐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엔클로저 운동이 면직물 공업에 대한 양모산업의 커다란 반격이 아니라, 양모산업 최후의 저항으로밖에 평가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제이, 제삼의 엔클로저 운동이 있었더라도, 그건 여전히 최후의 저항 '들' 에 불과하다고 평가될 것인가? 나는 그렇다고 말할 것입니다. 만일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나는 애덤 스미스로부터 J.S. 밀에게까지 이어지는 자본주의의 공고한 사상적 구축, 방직기, 비사, 증기선 등의 과학기술의 발달이 촉진한 자유무역의 확대 등이 1782년부터 1834년까지의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필연적으로 면직물 산업은 양모산업을 패배시킬 것이었음을 말합니다. 흐름이 인(因)이 될 수는 있지만, 사건에 대한 과(果)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건들은 흐름의 결과로서 튀어나올 수 있을 뿐, 흐름을 뒤바꾼 일은 거의 없다고, 원인의 위치에 설 수는 없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나는 역사 공부를 할 때, 단지 사건들만을 공부하고 외우는 것은 역사를 배우는 방법론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역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다른 장(場)들에서의 변화의 흐름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때 올바른 파악이 가능하며, 이 흐름들이 가끔씩 '역사적 사건' 이라는 것들 속에서 가끔식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할 때, 단지 역사적 사건들을 외우는 것— 예를 들어, 헤이스팅스 전투가 1066년에 발생했다든가, 프랑스 혁명이 1789년에 일어났다는 것 등—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들 속에서 그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을 읽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 사건들의 뒤에 존재하는 흐름을 추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역사가, 사건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사진첩의 역사가 아니라, 흐름들로 구성된 영화와도 같은 역사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세계사를 뒤바꾼 사건 OO가지…" 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 때문에, 위와 같은 제목의 책들은 역사의 파악에 있어서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오류는 역사의 인과 관계 파악에서의 오류입니다. 이 사건들이 세계사의 흐름을 뒤바꾼 것이 아니라, 그 흐름들이 세계사에서의 사건을 만들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떤 커다란 사건을 촉발시켰던 도화선 같은 사건이 없었더라도, 그 커다란 사건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과연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의 그 저주받을 총탄이 없었다면 제 1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회의적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당시 거대 식민지를 움켜쥐고 막대한 재화와 부를 축적했던 구체제 거대 열강과, 새롭게 뛰어든 신 열강 사이에서의 대립과 마찰은 결국 전쟁이라는 형태로 촉발될 것이었습니다. 19세기 당시, 정치‧ 경제에서의 커다란 두 가지 흐름—정치적으로는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로 대표되는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들이 열강 사이에서의 전쟁을 필연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처를 살해한 테러리즘이 없었다 할지라도, 연합국과 동맹국 사이에서의 대전쟁(Great War)은 발발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는 이 흐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엔클로저 운동이 면직물 공업에 대한 양모산업의 커다란 반격이 아니라, 양모산업 최후의 저항으로밖에 평가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제이, 제삼의 엔클로저 운동이 있었더라도, 그건 여전히 최후의 저항 '들' 에 불과하다고 평가될 것인가? 나는 그렇다고 말할 것입니다. 만일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나는 애덤 스미스로부터 J.S. 밀에게까지 이어지는 자본주의의 공고한 사상적 구축, 방직기, 비사, 증기선 등의 과학기술의 발달이 촉진한 자유무역의 확대 등이 1782년부터 1834년까지의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필연적으로 면직물 산업은 양모산업을 패배시킬 것이었음을 말합니다. 흐름이 인(因)이 될 수는 있지만, 사건에 대한 과(果)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건들은 흐름의 결과로서 튀어나올 수 있을 뿐, 흐름을 뒤바꾼 일은 거의 없다고, 원인의 위치에 설 수는 없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나는 역사 공부를 할 때, 단지 사건들만을 공부하고 외우는 것은 역사를 배우는 방법론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역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다른 장(場)들에서의 변화의 흐름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때 올바른 파악이 가능하며, 이 흐름들이 가끔씩 '역사적 사건' 이라는 것들 속에서 가끔식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할 때, 단지 역사적 사건들을 외우는 것— 예를 들어, 헤이스팅스 전투가 1066년에 발생했다든가, 프랑스 혁명이 1789년에 일어났다는 것 등—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들 속에서 그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을 읽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 사건들의 뒤에 존재하는 흐름을 추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by | 2008/02/08 20:28 | 역사, 군사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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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흐름, 핵심을 짚을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무슨 일을 하던지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