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일상 日常


2017 National Geographic Photography Competition Grand Prize "The Power of Nature"


1

네 번째 공지입니다. 예전 공지는 [1] [2] [3] 참조.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분은 여기에다 글을 달아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방명록을 겸합니다. 그게 아니어도 자유로운 메모장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링크와 트랙백은 허락 없이 하셔도 됩니다.

2

이 블로그는 주인장의 개인적인 취향으로 카테고리가 만들어져 있으며 각 카테고리의 연관성은 없습니다.
최근에는 복싱과 독서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글을 적게 쓰게 됨에 따라, 글이 아니라 댓글로 소통을 많이 하는 점 양해바랍니다.   
최근에는 리뷰할 만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경기를 다시 찾아보기가 귀찮아 지고 있습니다. 짚고 넘어갈 매치가 있다면 리뷰를 부탁하셔도 됩니다. 
물론 리뷰가 된다고 확답할 수는 없습니다. 

3

저는 로그인이 자신의 블로그를 걸고 하는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비로그인보다 더 용기있다고 보지만 블로그를 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많고 그런 분들의 의견도 마찬가지로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로그인 댓글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광고글만을 지우고 있습니다. 

4

이 블로그에 들어온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17. 09. 16. 게나디 골로프킨 vs. 사울 카넬로 알바레즈 복싱 拳鬪



1. Controversial Boxing Classic




 올해 벌어진 매치 중 최고였던, 그리고 기대만큼의 흥분과 재미, 또 여파를 남긴 경기가 끝났다. 17년 9월 16일(한국시간으로 17일) 게나디 골로프킨-사울 카넬로 알바레즈의 경기는 12라운드 끝에 논란의 드로우로 마무리되었다. 경기에 쏠렸던 주목의 크기만큼 그 경기의 판정 결과가 낳은 후폭풍도 컸다. 하지만 판정은 복서가 시장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말해줄 뿐, 실제 경기의 내용과 절대적인 연관성은 없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판정이 너무 논란에 휩싸인 나머지 실제 게임의 내용이 어떠했는지가 상대적으로 가려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둘이 리매치로 향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지금,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들이 경기에서 각자에 대해 어떤 모습을 보였고, 어떤 것을 느꼈는가이다. 경기를 다시 보면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지점들이 떠올랐다.  그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2. Round by Round

 다시 경기를 복기하기 전, 경기를 보면서 판정과 동시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아 글이 난삽하게 섞여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따라서 라운드별 승패와 라운드에서 생각해야 할 점들을 Note로 따로 분리하였다.




 1라운드. 골로프킨이 링 중앙을 점유하고, 알바레즈가 링 가장자리를 돌면서 게임이 시작된다. 약간 먼 거리에서 잽 싸움으로 탐색전이 열린다. 골로프킨이 날카로운 잽을 던져 보지만 알바레즈는 각을 주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골로프킨이 첫 번째 스트레이트를 던지지만 알바레즈가 서클링으로 회피하는데 반응속도가 예리하다.
 골로프킨이 1분 15초 경 알바레즈를 차단하기 위해 오른손을 휘두르지만 알바레즈는 바로 피하고 바디 카운터를 적중시킨다. 1분 경 골로프킨이 원투를 한 차례 맞추지만 알바레즈는 좋은 카운터 어퍼를 비롯한 몇 개의 펀치를 적중시킨다. 이런 라운드에서 우열은 몇 개의 유효타로 결정된다. 1라운드 알바레즈. 10-9 알바레즈.

 -1라운드 Note : 이런 양상의 게임에서 링 중앙의 추적자는 상대방의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앞발을 이용할 수 있다. 예전 나는 예전 게나디 골로프킨-매튜 맥클린 전을 다룬 글에서, 골로프킨의 특이한 점으로, 앞발만 먼저 움직여서 상대방의 탈출로를 차단할 때는 때때로 불리한 스탠스가 생기는 단점이 있는 반면 골로프킨의 링 커팅은 뒷발에서 시작하고, 그럼으로써 항상 스트레이트를 강한 힘으로 전달되는 스탠스를 유지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1라운드를 게나디 골로프킨-매튜 맥클린 전 1, 2라운드와 비교해 보라.
 
 하지만 지금 골로프킨의 오른 다리는 예전처럼 항상 안정적인 스탠스로 상대를 차단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의 스트레이트는 오른발을 돌리는(rotational) 게 아니라 오른발을 차면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펀치의 타이밍은 알바레즈에게 읽히고 있다.

 2라운드. 카넬로가 계속해서 링을 도는 것을 포기하고, 중앙으로 나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선에서 앞으로 공세를 취하려고 든다. 카넬로에게 중요한 과제는 큰 펀치를 맞지 않으면서 연타를 치는 것이고, 콤비네이션을 끝냈을 때 상대가 펀치를 칠 각을 내주지 않는 것이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넬로는 발을 대단히 넓게 잡고 연타에 좋은 상체 움직임을 결합하고 있다. 골로프킨이 공격해 보지만, 카넬로는 슬립과 스웨이를 이용해 골로프킨의 잽을 비롯한 공세를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카넬로는 확실한 주도권을 잡지는 못하지만 콤비네이션의 마지막을 바디샷으로 가져가면서 유효타 측면에서 더 효과적인 모습을 보인다. 반면 골로프킨은 오른손 타이밍이 읽히면서, 적당히 유지되는 공세의 리듬 속에서 큰 이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깨끗한 바디샷과 상대 스트레이트에 대한 카운터 어퍼와 함께 2라운드 알바레즈. 20-18 알바레즈.



 3라운드. 초반 2라운드 동안 골로프킨은 알바레즈의 리듬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골로프킨은 이런 흐름을 역행하기 위해 숏 훅과 잽을 갖고 기존 리듬을 깨트리며 알바레즈를 당황하게 만든다. 예컨대 거리를 빠르게 좁힌 다음 더블 잽을 잽-레프트 훅으로 변형해서 치는 등으로 리드 레프트 훅을 이용해 타격을 주거나, 오른손 타이밍이 읽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중을 싣지 않은 샷으로 즉, 왼발에 체중이 있을 때 오른손을 던지며 펀치를 적중시키는 등의 방법이다. 카넬로가 메이웨더가 하듯이 머리를 고의적으로 앞에 두며 골로프킨의 거리 감각을 시험하지만[distance deception] 골로프킨은 천천히 압박해 카넬로를 링줄에 몰아넣는 데 성공한다. 카넬로는 받아치는 데 집중하다 어느 새 링줄에 몰린 자신을 발견한다. 아직 라운드가 1분여 남아 있는 와중에, 카넬로가 클린치를 통해 극복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카넬로는 바디샷과 어퍼를 제외하고는 골로프킨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하고 라운드의 전반적인 공세를 골로프킨이 주도한다. 골로프킨은 레프트훅을 비롯 몇 개의 좋은 펀치를 적중시키며 처음으로 라운드를 가져온다. 3라운드 골로프킨. 29-28 알바레즈.

 -3라운드 Note : 3라운드는 경기의 전체적인 양상을 잘 요약한다. 잽 싸움에서 앞서지만 체중을 싣지 않은 변칙적인 펀치를 제외하고는 상대방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하는 골로프킨. 좋은 방어를 보여줌과 동시에 선제공격으로 콤비네이션을 치지만 결정적인 타격은 바디샷과 어퍼를 제외하고는 없는 카넬로. 이 라운드가 판정하기 어렵다면 당신이 각자 큰 타격을 주지 못하는 선에서 전체적인 주도권을 누가 가져갔는지를 판정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4라운드가 되자 카넬로의 리듬에 적응한 골로프킨이 카넬로를 압박하며 펀치를 교환한다. 카넬로가 날카로운 카운터를 몇 번 던지지만 골로프킨은 스텝을 통해 쉽게 무력화시킨다. 골로프킨이 한결 수월하게 카넬로의 리듬을 통제하며 압박하는데, 그가 성공적인 압박을 가져갈 수 있는 이유는 펀치를 통해 거리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펀치 없이 상체 움직임만으로 카넬로에게 가까이 접근한 다음 정교한 연타를 노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1분 30여 초가 남은 상황에서 카넬로와 골로프킨이 링줄에서 대치하고 골로프킨은 링 줄에 몰린 카넬로에게 침착하게 셋업 펀치들을 날리지만 카넬로가 링줄에서 사이드 스텝을 통해 그럭저럭 대치한다. 카넬로는 결정적인 위기에 빠지진 않았지만 함부로 공세로 나갈 수 없다. 골로프킨의 효율적인 압박이 돋보이며 4라운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4라운드 골로프킨. 38-38 even.
 
 -4라운드 Note :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카넬로의 약점은 안전 지대의 부재이다. 카넬로는 자신은 안전하면서 상대방에게 일방적인 공세를 강요할 거리에 묶어놓을 힘이 없다. 즉, 카넬로는 골로프킨을 멈춰세우지 못하고 있다.
 동시에 골로프킨에게선 오른손 펀치의 힘이 떨어진 것이 눈에 띈다. 나중으로 갈수록 더욱 결정적으로 드러나겠지만 골로프킨의 오른손 펀치는 크게 파워를 잃었다. 30초 경 좋은 라이트 핸드 카운터를 맞고도 카넬로는 끄덕도 없었다. 타이밍 상으로 완벽한 카운터였는데 말이다. 이는 나중 알바레즈의 방어를 바꾸는데 영향을 준다.  



 5라운드. 카넬로의 코너는 원투를 치고 빠져나갈 것, 블록하고 카운터를 칠 것을 주문하나 골로프킨은 이미 알바레즈의 아웃박스에 대한 효과적인 프레싱 방법을 찾은 것 같다. 골로프킨은 좋은 상체 움직임으로 펀치가 살짝 닿을 거리에서 카넬로를 몰아붙인다. 라운드가 시작된 지 30초도 되기 전 카넬로가 링줄에 몰리고 골로프킨이 좋은 콤비네이션으로 카넬로에게 타격을 준다. 카넬로는 선제공격을 통해 골로프킨의 압박을 없애 보려 하나 골로프킨의 공세를 좌절시키지 못한다. 1분여가 남은 때, 또다시 링줄에 몰린 상태에서 카넬로가 들어오는 골로프킨에게  레프트훅 카운터를 걸려다가 도리어 골로프킨의 회심의 스윙성 라이트 훅을 크게 얻어맞는다. 카넬로가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어 보지만 공세는 계속된다. 둘 다 눈이 좋고 뛰어난 상체 무브먼트를 갖고 있기 때문에 큰 펀치를 맞추는 데는 양쪽 모두 실패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골로프킨의 우세이다. 링줄에 몰려서도 알바레즈는 골로프킨의 오른손 타이밍에 반응하나 왼손만으로도 라운드를 가져가는 데는 충분하다. 5라운드 골로프킨. 38-37 골로프킨.

 6라운드. 판정하기 까다로운 라운드이다. 나는 라운드의 승패를 저울의 이미지를 이용해 판정한다. 파워 펀치나 큰 타격이 있을 때마다 한쪽에 추를 올려놓는 식이다. 둘이 동등하거나 비슷한 종류의 타격을 주고받았을 때 라운드의 리듬을 누가 주도했는지에 따라 조그마한 추를 얹는다. 라운드 초반 골로프킨이 연타를 통해 알바레즈에게 좋은 펀치를 맞추지만 알바레즈가 다시 반격하며 방심한 골로프킨에게 레프트훅을 비롯한 많은 펀치를 맞춘다. 2분 30초까지 골로프킨에게 기울었던 저울을 다시 원래대로 기울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 쪽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분 30초가 남은 시점에서 알바레즈의 다리는 다시 한계를 드러내고 곧 링줄에 몰려 펀치를 얻어맞는다. 다시 마지막 1분 30초에서 골로프킨이 알바레즈를 링줄에 몰아넣은 후 좋은 펀치를 맞추면서 주도권을 다시 가져온다. 각자의 순간을 나눠 가졌지만 마지막 1분 30초를 골로프킨이 근소하게 앞섰음이 명백하다. 6라운드 골로프킨. 58-56 골로프킨.

 -6라운드 Note : 라운드의 승패와는 별개로 알바레즈가 골로프킨에게 우세를 점한 순간을 되돌려보면 골로프킨이 확실한 공격 없이 공격의지만 갖고 거리를 좁혔을 때 알바레즈의 펀치를 불필요하게 허용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래서 이 장면은 후반 라운드의 예고편 격이다.

 7라운드. 이 경기를 다시 돌려 보는 것이 재밌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저번 라운드를 이렇게 하다가 내줬으니 이번에는 저렇게 한다는 식으로, 계속해서 이전 라운드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생각하고 나온다는 점이 있다. 알바레즈는 지난 라운드의 열세를 감지했는지 일방적으로 물러나지 않고 초반 적극적인 공세로 나온다. 하지만 곧 골로프킨의 프레셔에 의해 그런 공격의도는 사라지고 다시 추적자를 피해 앵글을 내주지 않는 도망자가 된다. 카넬로는 의미있는 아웃박스를 하고 있지 못하다. 카운터를 통해 저지선을 구축하고 싶지만 그의 카운터는 큰 위력이 없다. 반면 골로프킨은 링줄에 몰아 넣고 정신없이 펀치를 적중시키며 리듬과 실리 모두를 챙긴다. 판정하기 쉬운 라운드이다. 7라운드 골로프킨. 68-65 골로프킨.

 -7라운드 Note : 별개로 골로프킨의 오른손 파워가 예전같지 않다는 것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다리가 오른손의 펀치력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7라운드의 한 번의 오른손 단발을 제외하고는 적중률도 낮으며 골로프킨의 탈-체급 펀칭 파워를 갖고 있었던 라이트훅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오른손으로 공격할 때마다 오른다리가 살짝 뜨기 때문에 다시 다리를 원래대로 돌리는 과정에서 연타를 지속하는 것이 어렵다.



 8라운드. 카넬로는 콤비네이션을 하라는 주문을 받지만 시작하자마자 리듬을 파악한 골로프킨이 카넬로를 정신없이 몰아붙인다. 카넬로의 다리는 풀린 모습으로, 계속해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고 안전 지대를 구축하지 못해, 골로프킨은 인사이드에서 정교하고 깔끔한 콤비네이션으로 알바레즈에게 타격을 입힌다. 하지만 2분 30초 경 보여주는 라이트 핸드는 지금 그의 오른손 펀칭 파워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을 시사한다.
 라운드의 반전은 2분 20초 경 일어난다. 골로프킨은 늘 상대에게 불필요한 펀치를 허용한다는 단점을 갖고 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골로프킨이 상대에게 타격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고도 특별한 공격 없이 머무르다가 라운드를 뒤집어놓는 커다란 라이트 훅을 맞는다. 경기 전체에서 가장 큰 펀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샷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그의 맷집이다. 해설이 놀랄 정도로 누구나 골이 뒤흔들릴 만한 그런 펀치를 맞고서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모습은 과연 미들급 최고의 턱이라 할 만 하다.
 하지만 문제는 카넬로에게 숨을 돌릴 시간과 라운드를 자기 것으로 만들 만한 자신감을 줬다는 것이다. 알바레즈가 다시 자신 쪽으로 흐름이 돌아온다고 느꼈는지 링줄에 몰리지 않겠다는 용기를 갖고 링 중앙에서 골로프킨에게 펀치를 쏟아내며 버틴다. 다시 1분여가 남은 상황에서 링줄에 몰리지만 카넬로는 들어온 골로프킨에게 오히려 더 좋은 카운터 어퍼를 맞춘다. 골로프킨은 계속해서 카넬로를 추적하지만 확실한 이득을 취하지는 못한다.
 8라운드는 경기를 통틀어 가장 판정하기 어려운 라운드이다. 알바레즈는 라운드에서 가장 좋은 두 개의 펀치를 맞췄지만 골로프킨은 라운드 전체의 공세를 주도하고 잽을 비롯한 많은 펀치를 맞추었다. 판정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골로프킨의 초월적인 맷집이다. 두 개의 강한 펀치를 맞고서도 큰 타격을 입지 않으니 얼마나 피해를 입혔는지 애매한 셈이다. 입은 피해를 기준으로는 10-9 골로프킨이지만 맞춘 걸로 따지면 10-9 알바레즈이다. 나는 10-9 골로프킨으로 주었지만, 10-9 알바레즈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판정의 분산을 고려하여 10-10을 주겠다(어느 한쪽에 기울어지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양쪽 저지가 다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78-75 골로프킨.
 



 9라운드는 카넬로가 초반에 링 중앙에서 버티면서 게임을 이끌고자 하는데 30초만에 한계를 드러내고 골로프킨이 다시 몰아붙이는 양상이 반복된다. 카넬로의 콤비네이션에도 골로프킨은 큰 타격 없이 전방위적인 공세를 취한다. 카넬로가 또다시 골로프킨을 크게 치지만 하체는 물론이요 턱조차 끄떡없다. 라운드를 골로프킨이 주도한다. 10-9 골로프킨. 88-84 골로프킨.

 -9라운드 Note : 골로프킨이 라운드를 가져가지만 라이트 핸드가 위력적이지 않다는 점은 계속해서 눈에 띈다. 카넬로가 라이트 핸드를 세 개 이상 허용하지만 큰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 라운드 종료까지 약 50초 경. 골로프킨이 콤비네이션의 마지막을 오른손으로 가져갈 때 콤비네이션의 리듬이 끊기고 다시 스탠스를 재정비한 뒤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보인다. 또한 알바레즈의 앞발이 서서히 저지선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10라운드에 들어서자 기존 흐름을 알바레즈가 뒤엎는다. 카넬로는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일까? 카넬로가 시작하자마자 적극적인 공세로 밀어붙이며 강점인 어퍼 바디 무브먼트로 골로프킨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준다. 그러나 골로프킨 역시 뒤로 물러날 생각이 없다. 경기가 시작된 이후 한 번도 링 줄에 몰려 본 적 없는 강인한 인파이터의 강인한 기백이 스크린을 뚫고 새어 나온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골로프킨은 클린치 게임에 익숙하지 않고 상대가 클린치를 할 때 대처가 미숙하다. 알바레즈는 초반에 얻은 우세를 큰 타격을 입지 않으며 끝까지 잘 간직한다. 10라운드 알바레즈. 97-94 골로프킨.

 11라운드에 들어서자 카넬로가 본격적인 아웃박스를 가동한다. 라이트 핸드를 비롯한 카운터가 눈에 띈다. 반면 골로프킨은 급하다. 결정적인 차이는 골로프킨은 위험 지대에 대책 없이 스스로 들어가고 알바레즈는 원거리의 스텝, 중거리의 카운터, 초근접전에서는 클린치를 통해 희미한 저지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골로프킨이 라운드 막바지에 좋은 펀치를 몇 개 맞추긴 하나 알바레즈가 전반적인 라운드를 주도했음이 명백하다. 10-9 카넬로. 106-104 알바레즈.

 12라운드. 예전 알바레즈가 참고해야 할 경기로 오스카 델 라 호야-아이크 쿼테이를 말한 바 있는데 그 경기 12라운드를 보는 것 같다. 알바레즈가 다리가 풀린 와중에도 콤비네이션과 카운터, 클린치를 결합해 초반에 공격을 쏟아내 우세를 잡고 나머지는 그 우세를 지켜낸다. 골로프킨이 여전히 위험 지대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 카넬로가 콤비네이션을 적중시킨다. 골로프킨이 결정적인 타격을 주지 못하며 카넬로가 게임 마무리를 가져간다. 12라운드 10-9 알바레즈. 경기 스코어115-114 골로프킨.




3. 판정과 리매치

 내 스코어 카드는 그래서 8라운드의 판정 결과에 따라 115-113 골로프킨에서 114-114 무승부를 오가며, 이는 삼심 중 둘과 일치한다. 하지만 이건 골로프킨이 8라운드를 이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리어 골로프킨이 쉽사리 펀치를 허용해 라운드를 날려 버린 후반 라운드를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10, 11, 12라운드 중 한 라운드만 확실히 가져갔으면 118-110 알바레즈를 준 애덜레이드 버드를 묻어버리고 골로프킨이 스플릿 디시전으로 승리했을 것이다. 충분히 좋은 경기를 펼치고도 몇몇 라운드에서 골로프킨의 집중력은 떨어졌고 그 순간, 알바레즈의 공세는 적시에 힘을 발휘했다.


 매치를 3분 12라운드가 아니라 36분짜리 1라운드라고 보면 골로프킨이 전반적인 게임을 우세 속에 가져갔다는 것이 확실하다. 알바레즈는 경기 중반 다리가 풀린 반면 골로프킨은 더 큰 펀치를 맞고도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라운드별 채점 시스템이고, 그런 관점에서 경기는 근소해진다.

 실제로 게임을 유효타 관점에서 보면 알바레즈는 잽을 제외하곤 크게 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삼심 역시 근소한 스코어 카드를 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디어는 117-111 골로프킨에서 115-113 골로프킨까지 확실한 골로프킨의 승리로 컨센서스를 형성했다. 그것은 어째서일까.
 
 내가 보기에 그건 알바레즈가 기존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아웃박스를 시도하는 모습이 겉보기에 골로프킨의 게임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만일 메이웨더가 링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카운터와 유효타 위주의 게임을 가져갔다면 아웃박스했다고 판단할 라운드가 정석적인 펀처였던 카넬로가 같은 게임 플랜을 가동할 때는 골로프킨의 힘에 밀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보인 셈이다. 하지만 리매치가 벌어졌을 때, 애널리스트들은 카넬로의 이런 게임 방식에 대해 적응할 것이다. 이런 컨센서스는 곧 사라진다.

 나는 이 경기를 예측하면서 게임의 핵심은 카넬로가 공격에 쓸 에너지와 방어에 쓸 에너지를 잘 분배하면서 큰 대미지를 입지 않는 선에서 후반에 들어갈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썼다. 그것은 알바레즈의 상체 움직임을 높게 평가하고, 인사이드에서 골로프킨이 클린치 게임을 잘 하지 못한다는 관찰에 기반한 것이었다. 결국 골로프킨은 경기 중반, 알바레즈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는 데 실패했으며 알바레즈가 후반 라운드 우세 속에 경기를 끝마치게 놔둘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게임의 방식은 리매치 때도 여전히 변함없을 것이다. 알바레즈는 자신이 골로프킨의 오른손 타이밍을 포착하고 있음을 증명했고 큰 타격을 입지 않는 선에서 경기를 끌고나갈 수 있음을 말해 줬다. 하지만 이 경기가 말하는 것은 그것만은 아니다.

 알바레즈의 공격력은 골로프킨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하며 골로프킨은 알바레즈의 어떤 펀치를 맞던 간에 하체가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경기를 이끌 수 있다. 그러므로 리매치의 주제는 각자 어떻게 공격을 성공시킬지에 대한 것이 된다. 알바레즈는 계속된 프레셔의 흐름에서 어떻게 골로프킨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가에 답해야 하며 골로프킨은 왼손에 의존하는 펀치로 어떻게 알바레즈를 그로기에 빠트릴지를 고민해야 한다.

 변수가 있다면 골로프킨의 오른손이다. 골로프킨은 정확한 타이밍에 오른손을 맞췄음에도 알바레즈를 주춤하게 하지 못했다. 물론 골로프킨의 펀치력이 약해진 것도 맞고 알바레즈가 뛰어난 내구력을 보여준 것도 맞다. 분명한 것은 현재 골로프킨은 대다수의 체중을 왼발에 두고 있고 그가 오른손 펀치의 컨디션을 회복하지 않는 한 이 게임은 여전히 치열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4 : Ashes of Time

 나는 게임을 리뷰할 때마다 누가 나의 글을 다 이해할 수 있을 지 생각한다. 내가 쓴 언어는 단지 언어일 뿐이다. “골로프킨은 넉아웃 펀칭 파워를 가진 하드펀처이다”라는 서술은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파워’란 무엇인지, ‘펀처’란 무엇인지 안다 해서 “골로프킨은 넉아웃 펀칭 파워를 가진 하드펀처”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리가 없다. 관찰에서부터 사실이 나오고, 사실을 모여 논리가 되고 글을 만든다.

 관찰이 사실을 만드는 것을 이해한다면, 골로프킨의 동작을 유심히 관찰하지 않은 사람이 내가 어떤 말을 했다고 해서 그걸 온전히 이해하리라 보지 않는다. 나는 모든 의견을 의견으로서 존중하지만 그곳에 관찰이 없다면 크레딧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느끼고 싶다면 한 번 복기한 글과 함께 경기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만약 거기서 나와 다른 관찰을 한다면, 얼마든지 그 부분에 대해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전 글에서 확인되지 않은 신체적 이슈를 언급한 것은 내 실수이지만 여전히 내 관찰을 수정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본 골로프킨의 하체의 안정감은 크게 줄어 있었다. 오랜만에 돌려 본 예전 경기들을 보자 그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나는 과거 2013년 게나디 골로프킨-매튜 맥클린 전을 리뷰하며 골로프킨이 기술적으로 완벽하다라고 썼다. 다시 돌려 본 예전 게임들은 그때의 내 관찰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알려줬다. 스텝의 부드러움, 하체의 포지션, 넉아웃 펀칭 파워, 턱의 맷집까지. 골로프킨에게 부족해 보이는 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모든 복서는 결국 시간의 흐름을 맞이하기 마련이고, 그 도전 앞에 결국 언젠가 무릎을 꿇게 된다. 지금 내 눈에는 강한 맷집과 정교한 단발, 그리고 계속된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심폐지구력과 강한 기백을 가진 펀처가 있지만, 그는 이전처럼 무결점의 하드펀처는 아니다.

 2년여의 기다림 끝에 그는 빅매치를 잡았지만, 사울 카넬로 알바레즈라는 또 다른 뛰어난 도전자를 맞아서 판정의 공교로움을 떠안았다. 만약 재경기 끝에 골로프킨이 패하게 된다면 어떤 평가를 갖게 될 지 생각한다. 쉬운 상대들만 만났던 과대평가된 복서인지, 아니면 동시대의 모든 강자들이 피했던 복서인지. 전자와 후자 어딘가에서, 나는 지금 그때의 복서를 추억한다. 나는 그의 많은 강점들이 시간의 풍화 속에 사라졌다고 보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은 월드클래스 복서이며, 네가 봤던 내 모습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 바람을 기대하며 나는 내년 5월의 경기를 벌써부터 기다리게 됐다.








타이거! 타이거! 복싱 拳鬪


-게나디 골로프킨-사울 카넬로 알바레즈에 부쳐.




1. Judgement Day


 복싱을 수련한 지도 십 년이 되어가고 경기를 본 건 더 오래 되었지만 언제나 빅매치는 가슴을 떨리게 한다. 단순히 경기가 재밌을 것 같아서만은 아니다. 복싱 경기를 볼 때의 쾌감을 피와 땀이 오가는 맹렬한 난타전에서 찾거나 혹은 뛰어난 복서 사이에서 벌어지는 하이-스피드 체스에서 찾는다면 그런 경기는 수도 없이 추천해 줄 수 있다. 난타전을 보고 싶은가? 마빈 해글러-타미 헌즈를 보라. 최상급 복서 사이에서 이뤄지는 체스매치를 보고 싶다면? 슈거 레이 레너드-윌프레도 베니테즈가 제격이다.

 이건 단순히 난타전이나 체스매치의 문제가 아니다. 빅매치가 진정으로 내 심장을 쥐어짜며 마른 침을 삼키게 하는 이유는 내가 그들에 대해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 심판받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링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대부분의 승패는 결정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내가 결정되었다고 믿는 승패는 지금 이 순간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삶과 죽음 양쪽의 상태에서 공존한다. 그 때마다 나는, 과연 내가 이해한 그는 어디까지 실제의 복서와 부합하는 사람이며, 내가 이해한 복싱은 어디까지 실제 승패와 밀접할까 궁금할 따름이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이 빅매치를 마주하게 됐고, 또다시 내가 이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시험받게 됐다.




 2017년 9월 16일(한국시간으로 17일), 게나디 골로프킨-사울 카넬로 알바레즈 전이 벌어진다. 그 동안 두 복서 모두 내가 애정깊게 지켜보는 복서들이었다. 알바레즈는 2011년 알폰소 고메즈를 잡았을 때부터, 골로프킨은 2013년 매튜 맥클린을 넉아웃시켰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내 시선 안으로 들어왔고 그 순간부터 한 번도 내 시야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파퀴아오, 메이웨더, 버나드 홉킨스만큼이나 꾸준히 내가 복싱을 보는 즐거움을 제공하던 복서 둘이 붙는다.

 둘의 매치는 어떻게 성사되었는가, 알바레즈는 더커이고 골로프킨은 체리피커인가는 프로모션과 매니저, 복싱 기구와 프리미엄 케이블 네트워크가 모두 얽혀서 길게 떠들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래, 선택권과 명분을 가진 알바레즈가 골로프킨에게 기회를 줬고, 이 경기는 만들어지기까지 2년이 걸렸다. 하지만 그게 더 이상 중요한 문제인가? 전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이 매치는 올해 벌어진 경기 중 가장 최상급 티어에 있는 두 복서 사이의 대결이며, -160lbs 디비전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치이고, 파퀴아오-코토 이후로 가장 뛰어난 펀처들끼리의 대결이다.




 하나는 인종적 기반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스타일을 갖고 당당히 상대방을 병탄해 나가는 젊은 사자요. 나머지 하나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하드코어 팬들의 지지를 결집해 마침내 메인 무대로 올라선 늙은 호랑이다. 영 라이언과 올드 타이거. 황금빛 갈기를 기른 당당한 메히칸 펀처와 동토에서 온 호목虎目의 카자흐스탄 인파이터가 만날 때 대중은 무슨 엄청난 일이 벌어질 지 침을 삼키며 기꺼이 이 매치에 돈을 던진다.

 누구를 고를 것인가?



2. Tamerlane the Great

 알바레즈와 골로프킨이 상대한다고 했을 때 그 둘이 각자 어떤 방식으로 승리를 가져가는지, 그리고 최근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아는 것은 진정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그들이 상대를 만났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게나디 골로프킨은 침착한 살인마가 연상되는 뛰어난 펀처이다. 그는 공격과 방어 양쪽에서 돋보인다. 골로프킨의 경기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잽에서 시작되는 중거리에서의 우월한 교환비를 가져가며, 상대방에게 타격을 준 다음 상대방이 지속적으로 펀치를 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는 곧 상대방이 잽으로 의미 있는 저지선을 만들지 못한다 싶으면 바로 인사이드 파이트로 전환하여 상대방에게 조금 맞아주는 한이 있더라도 강한 훅과 어퍼로 상대방에게 충분한 타격을 입히는 데 집중한다. 그의 공격은 빠르게 가드의 틈을 뚫는 연타보다는 완성도 높은 단발로 구성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상대방이 호흡과 리듬을 회복할 틈을 주지 않고 링을 커팅하는 강한 압박이 특징이다.

 이 방식의 단점이라면 알바레즈와 비교해 보면 쉽다. 알바레즈는 잽을 통해 서서히 방어선을 무너트린 다음 연타를 통해서 상대방에 대한 우세권을 어필한다. 골로프킨은 중거리에서 첫타부터 맞추기 위해 던지지만 알바레즈는 마지막 펀치를 맞추기 위해 연타를 쏟아낸다. 골로프킨의 방식은 펀치를 경제적으로 낸다는 점에 있어서 장점을 가지지만, 상대방의 방어 시스템을 충분히 무력화시키지 못한 채 반격의 여지를 남겨둔 상태로 상대방의 공간에 들어선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골로프킨이 이런 방식으로 계속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첫째, 그의 중거리에서의 펀치 단발 완성도가 대단히 높으며, 둘째, 그의 맷집이 미들급 내에서 가장 강력하기 때문이다. 골로프킨은 웬만한 펀치로는 비틀거리지 않으며, 상대방이라면 뒤로 물러났을 펀치를 정통으로 얻어맞고서도 살짝 찡그린 후 바로 압박한다. 하지만 동시에 맞아주지 않아도 될 펀치들까지 허용하며, 특히나 상대방이 골로프킨과의 펀치 교환에서도 겁먹지 않고 계속해서 펀치를 낼 경우 라운드를 쉽게 상대방에게 내주는 일이 많다.

 이런 단점들이 잘 드러난 경기가 최근의 다니엘 제이콥스 전이라 할 수 있겠는데 골로프킨은 초반 제이콥스와의 잽 싸움 이후 중거리, 인사이드로 점차 거리를 가깝게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제이콥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도리어 상대와의 거리를 가깝게 머무른 나머지 제이콥스의 펀치를 불필요하게 허용하여 경기의 종료 공이 울릴 때까지 링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실패하였다. 골로프킨은 제이콥스와의 경기에서 만장일치 판정승을 가져갔지만 4라운드에 뺏은 넉다운이 아니었더라면 뒷말이 나오지 않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며 자칫하다간 알바레즈와의 경기를 잡기도 전 리매치로 끌려갔을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분들이라면 골로프킨이 쉬운 길을 택할 수 있는데도 어려운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넉아웃 몬스터라는 기믹을 위해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그의 타고난 공격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다소간 피해를 입더라도 들어가려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어차피 중거리에서의 압도적 우위가 보장된다면, 상대방이 펀치 다발을 내며 앞으로 전진하면 살짝 뒤로 물러나 받아 주고 다시 중거리에서의 효율적인 교환비를 가져가면 될 터다. 하지만 골로프킨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못한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이것이 내가 최근 골로프킨의 경기를 바라보며 느낀 두 번째 감상이다. 나는 최근 골로프킨의 무릎에는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한다. 특히 왼쪽 무릎이 문제라고 보여지는데, 2년 전의 데이빗 르뮤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골로프킨은 중거리에서 압도적인 잽 싸움을 통해 르뮤의 머리를 헤드헌팅했고, 좌절감에 휩싸인 르뮤가 마지막 선택으로 황소처럼 돌진했으나 부드러운 스텝 아웃으로 빠져나갔다. 중거리에서의 교환비만으로 르뮤는 좌절을 겪어야 했고 6라운드를 채 버틸 수 없었다.

 하지만 다니엘 제이콥스 전에서 노출된 골로프킨의 모습은 상대가 콤비네이션을 칠 때 제자리에 가드를 붙이고 대주는 것 외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펀처의 모습이었다. 왼무릎이 예전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미끄러지듯이 흐르듯 움직이던 그의 움직임은 사라졌고, 그는 발이 붙은flat-footed 볼륨펀처가 되어버렸다. 물론 여전히 그는 강력하다. 그의 턱은 아직 한 번도 무너진 적 없는 단단함을 과시하며 그의 레프트는 왼발과 상관없이 파괴력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예전의 골로프킨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펀처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절름발이 티무르 대제다.


3. Mexican Grindhouse




 이젠 알바레즈의 경기 운영 방식과 최근의 변화를 짚어 보자. 알바레즈는 기본적으로 공세적 카운터+콤비네이션 펀처이다. 그는 주로 잽을, 간간히 리드 레프트훅을 섞어서 중거리 우세권을 잡아 나가고, 천천히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힌다. 인사이드 파이트에서는 훅과 어퍼, 그리고 바디까지 섞은 어퍼 바디 무브먼트를 통해 타격을 준다. 거리가 벌어지면 힘을 실은 콤비네이션을 스텝 인 하면서 쏟아낸다.

 상대 공격에 대한 방어는 주로 공세를 통해 극복한다. 카넬로는 좋은 상체 무브먼트와 그에 곁들이는 카운터를 갖고 있다. 상대방이 뻔히 보이는 펀치로 타격을 주려고 들면 곧장 카운터로 응수한다. 당장 상대방을 넉아웃시키는 펀치들은 아니지만 대미지를 입히기엔 충분하다. 상대방이 뒤로 물러나면 다시 처음부터 반복한다.  

 최근 알바레즈가 눈에 띄게 발전한 부분은 들어가는 스텝이다. 과거 발을 붙이고 콤비네이션을 쏟아냈던 카넬로는 이제 스텝 인 하면서도 밸런스가 흔들리지 않으면서 연타를 쏟아낼 수 있게 되었고, 상대의 우반면으로 돌아 들어가며 리드 레프트훅을 휘두를 줄 아는 복서가 되었다. 중거리에서 콤비네이션을 통해 반격의 틈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공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며 상대가 뒤로 물러나지 못한다면 그대로 4연타를 적중시킨다.

 이런 발전은 카운터 측면에서도 돋보인다. 카넬로가 플로이드를 상대로 한 해법으로 카운터링을 들고 나왔을 때 그것은 아직 완성도 낮은 대책에 불과했다. 하지만 알폰소 고메즈 전에서 보여줬던 결정적인 타격에서 언뜻 드러났듯이 원래부터 카넬로 안에 내재되어 있던 카운터에 관한 타고난 감각은 잘 갈고 닦아져 이제 인사이드 파이트에서 슬리핑과 어퍼를 조합해 상대의 고개를 곧잘 뒤로 젖히곤 한다. 그 방식으로 커클랜드를 끝장냈고, 차베스 주니어도 같은 방식으로 보냈다.

 동시에 양질의 도전자들을 상대로 점점 좋은 모습들을 보인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이다. 2015년부터 카넬로의 상대는 커클랜드, 코토, 칸, 스미스, 차베스 주니어로 이들은 같은 기간 동안 골로프킨의 상대인 머레이, 먼로 주니어, 르뮤, 웨이드, 브룩, 제이콥스에 비해 질적으로 우수하다. 그런 상대들을 맞이해서, 집중력 부족으로 메이웨더에게 절망감에 가까운 펀치를 쏟아냈던 어린 알바레즈는 12라운드 경험을 수없이 쌓으며 매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좋은 콤비네이션 속도와 스텝 인 타이밍, 상체 무브먼트와 카운터는 공격과 방어 양면에서 카넬로의 발전을 잘 보여주는 요소이다.

 그렇다고 카넬로 알바레즈가 무결점의 펀처는 아니다. 알바레즈는 방어할 때 저지선을 만드는 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약한 상대에게도 자신의 위험 지대를 쉽사리 허용하는 단점이 있다. 이는 인사이드에서 정면으로 맞상대한다는 자신의 담대함을 보여주기에 좋을지는 몰라도, 골로프킨 같은 탈-체급 펀칭 파워를 가진 펀처에게는 만용에 불과하다. 좋은 스텝 인은 서클링이나 피벗 같은 좋은 스텝 아웃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링줄에 몰려서는 상체를 기울여서 맞받아칠 뿐 발을 활용해 빠져나가는 능력이 부족하다.

 지금까지 골로프킨과 알바레즈를 가볍게 대조해 보았다. 둘은 조화로운 밸런스를 바탕으로 아웃복서/인파이터를 대처하는 밸런스 좋은 펀처이지만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골로프킨은 당장 자신의 공세를 지속하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좀 얻어맞는다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당장 실제적인 타격을 주려고 든다. 반면 알바레즈는 상대방에게 실질적인 타격을 주지 못하더라도 연타와 카운터를 통해 공세를 지속하려 한다. 이런 둘의 차이는 실제 경기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인가?


4. Slaughterhouse-Five


 이제 경기가 벌어지고 생겨나는 몇 가지 양상들에서 어떤 복서가 유리할지에 대해 말해 보자. 이런 가상의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것은 어느 순간에 뭘 해야 승리를 가져갈 수 있는지 명료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원거리에서의 잽 싸움

 잽이 닿을락말락한 거리에서 스텝 한발짝을 집어넣고 빼는 잽 교환 상황에서 어떤 복서가 우세를 점할 것인가? 나는 골로프킨의 약우세라고 생각한다. 알바레즈의 잽은 뛰어난 편이지만 본질적으로 밑에서 시작해 위쪽으로 쳐올린다는 약점이 있다. 메이웨더 같은 선수를 잽으로 때리기 위해서는 위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리찍는(Drop Jab)이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고 결국 그날 알바레즈의 잽은 메이웨더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골로프킨이 메이웨더는 아니지만 알바레즈의 잽은 그보다 덩치 큰 상대에게 걸리거나, 충분히 앞손을 내민 상대에게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반면 골로프킨 역시 알바레즈를 때리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알바레즈는 좋은 눈을 가졌고, 부드러운 스웨이/슬립을 통해 상대의 잽을 무력화시킨다. 여기서 골로프킨에게 약우세를 준 것은 서로 맞을 각오를 하고 잽을 교환했을 때 알바레즈의 타격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이다.  

-원거리에서의 연타 싸움

 잽이 닿을 거리에서 잽이 아니라 잽으로 시작하는 콤비네이션을 서로 쏟아붇는 원거리 상황에서 어떤 복서가 우세를 점할까? 알바레즈가 골로프킨을 압도할 것이다. 골로프킨의 공격에 대해 알바레즈는 잘 빠져나가려 들 것이고 골로프킨은 반면 빠지기보다는 제자리에서 펀치를 받아내려 들 것으로 예측한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은 저지들이 알바레즈 쪽으로 기우는 요인이 된다. 알바레즈가 들어가다가 커다란 카운터를 맞지 않는 이상, 이런 대치는 알바레즈에게만 유리할 뿐이다.
 
-중거리에서 훅 싸움

 레프트훅과 라이트훅이 서로 닿을 만한 거리에서 어떤 복서가 우위를 점할까? 골로프킨이 알바레즈에 비해 강한 우세를 점한다. 모든 복싱 선수들의 쉐도우를 가상의 선으로 그려 보면 허공의 z축을 향해 모여든다. 레프트훅, 라이트훅, 레프트 바디, 스트레이트 모두 내 몸에서 나와 그 축으로 회귀한다. 이 z축을 나의 중심으로부터 멀게 할수록 중심은 흐트러지고 휘청거리게 된다.

 골로프킨의 쉐도우를 볼 때마다 중거리 훅의 안정적인 밸런스에 늘 놀란다. 카넬로의 쉐도우도 기본기에 충실한 편이지만 골로프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카넬로가 훅을 던지기 위해선 대단히 가까이 가야 할 필요가 있지만 골로프킨은 스트레이트보다 약간 짧은 거리에서도 사정없이 훅을 전달한다. 겉으로 보기에 같은 훅이지만 골로프킨의 롱훅은 훨씬 난이도가 높고 정교하다. 데이빗 르뮤 전에서의 4라운드 종료 1분 17전을 보라. 골로프킨은 롱 훅을 실패하고서도 어떤 밸런스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카넬로는 골로프킨만 때릴 수 있고 자신은 때릴 수 없는 거리에서 빨리 빠져나와 골로프킨을 밀쳐내든지 아니면 아예 안쪽으로 들어서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인사이드에서 훅과 어퍼컷 싸움

 거의 동등하지만 카넬로에게 크레딧을 주겠다. 맷집이라는 측면에서 골로프킨이 우위에 있지만 결정적으로 골로프킨은 클린치 상황에 대한 대처가 미흡하다는 단점이 있다. 카넬로는 훅이 아니라 어퍼를 통해 계속해서 골로프킨의 머리를 사냥하려 들 것이고, 실패 후 타격을 입으면 바로 클린치로 전환할 것이다. 골로프킨 역시 카운터를 치려 들겠지만 인사이드에서 카넬로의 연타스피드가 더 빠르기에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사이드에서 양쪽 모두 상대방을 타격할 수 있는 충분한 파워와 스피드가 있다.

-후반 라운드 상황

 카넬로에게 전적인 크레딧을 준다. 카넬로는 젊고 12라운드까지 많은 펀치다발로 공세를 지속하는 능력을 계속해서 입증해 보였다. 반면 골로프킨은 대부분을 넉아웃으로 끝내 긴 라운드에 돌입한 적이 적고, 나이가 들었으며 후반 라운드로 돌입할수록 집중력을 잃고 많은 펀치를 허용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노출했다. 다니엘 제이콥스 전에서도 후반 라운드에 괜히 들어가다가 더 큰 손해를 본 적이 있었다. 챔피언십 라운드에서 카넬로가 골로프킨을 몰아붙인다면 모든 저지들은 홀린 듯이 알바레즈 10-9 골로프킨을 써낼 것이다.


5. Exogenous Variable

 각자 승리의 시나리오를 적기 전에 두 개의 외생변수를 짚고 가야 한다. 지금까지 내 예상은 모두 이 두 가지 외생변수가 각자 특정한 값이라는 가정에 기초해 있다. 만약 이 변수가 내 예상과 빗나간다면 앞으로의 예상은 통째로 휴지조각이 될 위험성이 상존한다.

 첫 번째 가정은 골로프킨의 무릎이 어느 정도는 회복했을 지 모르지만 절대 과거의 컨디션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그가 과거와 같이 부드러운 움직임을 통해 상대방의 펀치를 숄더 무브먼트와 합쳐서 부드럽게 흡수한다면, 알바레즈의 모든 공세는 무력화되고 골로프킨이 압도적으로 모든 공방에서 알바레즈를 제압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공이 울렸을 때, 우리는 퉁퉁 부은 알바레즈의 눈커풀에 대해 엔스웰과 아이스백으로 붓기를 빼내려 애쓰는 컷맨을 매 라운드마다 구경할지도 모른다.

 두 번째 가정은 알바레즈의 증량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거라는 점이다. 성공적 증량과 증량실패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알바레즈가 만약 증량에 실패한 채로 나타난다면, 우리는 탄수화물 없이 움직이는 산송장을 구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둘은 어느 정도 예측되는 부분이다.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고, 알바레즈는 이미 2014년의 오스틴 트라웃 전부터 rehydration 후 170lbs의 무게로 링에 들어섰다. 이번 골로프킨과의 힘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174lbs정도의 무게를 갖고 들어가리라 예측되며, 골로프킨의 다리와 알바레즈의 증량은, 물론 경기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변수이지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6. Key to Victory
 

 내가 쇼타임 복싱의 커멘테이터 알 번스타인이나 스티브 파루드는 아니지만, 위의 상황을 조합해 알바레즈와 골로프킨의 승리를 위한 시나리오를 내심 그려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알바레즈의 승리를 위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1. 인사이드에서 클린치 힘싸움을 통해 골로프킨의 체력을 저하시키고, 2. 중거리에서 넉다운이나 그에 준하는 결정적인 펀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3. 기회를 잡을 때마다 좋은 상체 움직임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펀치 세례와 연타를 퍼부어 라운드의 주도권을 자신이 쥔다.

 반면 골로프킨은 1. 발을 적당히 살려 알바레즈의 연타를 일방적으로 대주지 않으면서, 2. 중거리에서 넉다운이나 그에 준하는 결정적인 타격으로 경기 후반부 그로기 상태를 만든다. 3. 그러면서 인사이드에서 카운터 어퍼 같은 눈에 박히는 펀치를 맞지 않는다. 가 되겠다.

 이 두 시나리오는 각각 전범이 되는 선례가 있다. 그것은 각각 아이크 쿼테이-오스카 델 라 호야, 버나드 홉킨스-오스카 델 라 호야 경기이다.

 

 쿼테이 전에서 델 라 호야는 발이 죽은 쿼테이의 날카로운 펀치를 스텝으로 피해가며 마지막 30초 경 빠른 콤비네이션을 통해 주도권을 쥐었다. 다운을 당했지만 또 두 번의 다운을 뺏어내며 경기를 그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반면, 버나드 홉킨스-오스카 델 라 호야에서는 능구렁이 버나드 홉킨스가 미들급에 올라온 델 라 호야를 상대로 9라운드 동안 큰 펀치 없이 주도권을 잡다가 간장 펀치liver shot를 통해 델 라 호야를 넉아웃 시켜버렸다.

 이 두 경기 중 내일 벌어질 경기는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 것인가.

 내일 초반 라운드는 알바레즈와 골로프킨이 서로 간을 보는 가운데 알바레즈가 콤비네이션으로 우세권을 가져가며, 중반은 골로프킨이 들어가서 서로 공격하는 가운데 골로프킨이 인사이드에서 우위를 점하고, 후반에는 체력이 떨어진 골로프킨을 알바레즈가 다시 몰아세우는 구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게임의 핵심은 카넬로가 공격에 쓸 에너지와 방어에 쓸 에너지를 잘 분배하면서, 큰 대미지를 입지 않는 선에서 후반에 들어설 수 있는가이며 바꿔 말하면 게임 중반부에 골로프킨이 얼마나 궤멸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즉, 중거리에서의 펀치교환 이후 중반에서의 인사이드 파이트에서, 누가 얼마나 강한 펀치를 얻어맞는지에 따라 쿼테이-dlh전이 될 것인가, 홉킨스-dlh전이 될 것인지가 판가름난다.

 인사이드에서 몇 개의 중요한 펀치가 엄정한 집중력과 그 틈을 파고드는 판단미스 속에서 터져나오며 전체 흐름이 쥐락펴락 되는 걸 정확히 시뮬레이션 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필요한 것이야말로 직관일 것이다.
 
 그러므로 내 예상은 다음과 같다. 115-113 골로프킨 MD. 골로프킨이 초반 라운드에서는 3-1 정도로 밀리지만 중반 라운드에서 다운을 포함해 많은 펀치를 적중시킬 것이며, 알바레즈의 스타일이 부심 친화적이기 때문에 충분히 후반부의 많은 라운드를 가져갈 것이라 생각한다. 골로프킨의 다리가 적당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거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7. Superemacy


 때때로 어떤 복서에 대한 애정은 나를 사무치게 만들어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것까지 내게 말해준다. 예전 메이웨더-알바레즈 전을 앞두고 알바레즈가 기존의 170lbs가 아닌 165lbs로 리게인 할 것이라는 것이나 카운터링에 기대를 걸고 메이웨더 전을 임하리라는 건 그만큼 카넬로의 입장에서 메이웨더를 깊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둘 다 옳았지만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 카넬로는 메이웨더를 상대로 효과적인 공격을 해내지 못했다.

 보다 더 드물게 복서들은 내 애정을 넘어선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버나드 홉킨스를 정말 잘 알고 있으면서도 코발레프에게서 12라운드를 버티질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홉킨스는 뛰어난 복서지만 코발레프는 도저히 반백의 나이로 싸울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경기 종료를 알리는 공 소리가 울리고 홉킨스가 두 발로 서 있을 때 나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해한 감정을 느꼈다. 그건 거장의 스완송이었고, 링에서 한 인간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외치는 거대한 목소리였다.  

 분명 나는 알바레즈와 골로프킨 모두를 좋아하고 이 둘을 지금까지 쭉 지켜봐 왔지만 이번엔 메이웨더-알바레즈 전에서의 알바레즈일지, 아니면 홉킨스-코발레프에서의 홉킨스일지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분명 골로프킨의 승리를 예측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직관은 알바레즈가 뒤엎을 거라고 말한다.

하체의 밸런스와 브레이크를 거는 능력, 가드 사이의 빈틈을 뚫고 계속해서 충격을 주는 능력, 상대방에게 계속된 카바를 강요하는 능력, 움직이는 물체를 맞추는 능력 모두가 뒤섞여 하나의 결과만이 나타난다.

 그걸 보고 이게 내 이해의 범주인지 아닌지,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무용한 일이다. 결국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그래서 누가 더 강한 복서인가라는 질문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골로프킨을 택한다.

 누군가는 리니얼 타이틀이야말로 진정한 최강자라 말하겠지만 이미 예전부터 미들급 최강자는 골로프킨이었다. 나는 2013년 매튜 맥클린 전을 다룬 글에서, 골로프킨은 향후 3년 안 어떻게든 미들급 리니얼 타이틀을 얻을 것이라고 썼고 결국 생각보다 약간 늦었지만 돌고 돌아 마침내 타이틀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마 그가 받을 수 있었던 최고의 도전자와 함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4년 전 썼던 글의 대답이다.









핵무기 재배치의 필연적 귀결에 대한 '무모한' 설명 생각 想


*북한 6차 핵실험 직후(9/4일)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던 글. 크게 세 가지 주장에 대한 반론과 한 가지 주장을 썼다. 세 가지 주장이란 '누구 때문이다. 이 정책이 아니었으면 막았다..누가 돈 줬고 누가 걍색시켰다' 하는 인물론, 아직도 어떤 협상의 대가로 핵을 폐기시킬 수 있다는 핵폐기론, 그리고 모든 매파적 정책이 전쟁으로 가는 직행 고속도로인것처럼 생각하는 전쟁불가론을 말하며, 한 가지 주장이란 이 북핵구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한 다음 균형-대치 상태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I. 북핵을 둘러싼 구조의 문제

 어떤 일이 벌어졌다고 했을 때 그 원인을 구조에 두느냐 인물에 두느냐는 필연성과 우연성이라는 면에서 서로 상충하는 면이 있다. 말하자면 구조를 강하게 의식할수록 인물의 힘은 퇴색한다. 예컨대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카이저가 비스마르크가 세운 전통적인 외교노선에서 벗어난 데 찾는 것과 신흥 제국주의 국가와 기존 제국주의 국가의 대립으로 보는 것.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히틀러라는 개인에 의존해 설명하는 것과 무리한 베르사유 군축조약의 여파와 경제대공황에 이은 파시즘의 대두로 설명하는 것은 서로 상반된 설명이다. 이 둘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는 이런 것을 구조의 깔대기라는 모델로 설명한다. 구조는 전반적인 방향성을 결정한다. 발생 시점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깔대기에 빨려 들어가듯이 더 강한 쏠림이 생기고, 발생년도에 점차 가까워질수록 개인이 힘을 발휘할 공간이 적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걸 구조의 방향성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 개인이 급격한 방향성을 만들어버리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은 9/11테러를 제외하고 설명할 수 없고 9/11 테러는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개인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미국이 9/11테러 전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sonnet.egloos.com/4572971)

 비슷하게 북핵 위기에 대해서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아니다 이명박 때문이다, 말하지만 진정으로 한국이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을 가로막을 수 있었던 마지막 때는 94년 북폭이 마지막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김영삼이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 때에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진지하게 군사적 옵션을 다루지 않았고, 군사적 옵션을 포기할 만한 합리적 선택지가 많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1차 북핵 위기는 미북핵협상(Agreed Framework) 으로 해결되었(다고 생각했)기도 했다. 하지만 94년은 미국의 최대 라이벌 러시아는 옐친 치하에서 혼란으로 빌빌대던 시기이고, 중국은 화평굴기를 천명하기 전이었으며, 미국은 걸프전을 끝냈었고 골디락스라 불리는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북한에게 정밀폭격을 한다고 했을 때 타겟이 포착하기 쉬운 지상에 노출되어 있어 폭격의 유리함이 있었던 시기였다.
 물론 그때의 북폭이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의지를 근본적으로 꺾을 수는 없었겠지만 최소한 크게 위축시키거나 "이후에도 군사적 옵션을 하나의 선택지로 두며" 협상 테이블에서 진지하게 협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때 북폭을 하지 않았던 선택이 비합리적이었다고 덮어놓고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니다. 정밀폭격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확전되어 전면전까지 이어진다고 했을 때, 전쟁을 재개한 대통령, 수많은 인명피해를 내고 한반도를 박살낸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누가 안고 싶겠는가?

 94년 이후로 잠잠하던 북한은 눈치를 보다가 2002년 12월 폐연료봉을 갖고 핵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지금은 이미 어떤 옵션으로도 해결 불가능한 시점에 도달했다. 나는 이 지경으로 된 데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그 누구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클린턴, 조지.W.부시, 오바마, 트럼프의 탓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무엇이 어떻게 되었든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 이들 중 누군가가 어떤 행동을 했어도 그걸 근본적으로 막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미국과 한국은 각각 4년과 5년마다 정권교체의 시기를 맞이하고, 한미 역대 정권 중 어떤 정권도 꾸준하고 확실한 의지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밀어붙일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물론 초강대국이지만 그만큼 아프간-이라크-카트리나-오바마 케어-시리아 같은 온갖 이슈에 발이 묶여서 한 번도 북한에만 집중해본 적이 없다. 한국은 5년마다 기존의 정책을 실패했다고 비난하면서 손을 놓고 있었다. 매번 정권들은 지난 정권 시기야말로 북핵의 결정적인 진전을 막을 "골든 타임"이었다고 주장하며 전임자를 비난하는데 집중했지만 결국 그 말을 뒤집어보면 "이미 골든 타임은 지나갔으며 지금 정권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진짜 "골든 타임"은 94년에 지나갔으며,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했어야 했던 건 "어떻게 북한의 핵을 포기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그래서 북핵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반면 북한은 그런 한미의 상황을 이용해서 살라미 전술과 패이비언 전략을 적절히 혼합했다. 협상을 하면, 다시 그 협상을 이행하는 조건의 협상을 시작했고, 다시 협상을 이행하는 조건의 협상을 이행하는 조건의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쪼개기 전략은 시간이 북한 편이라는 대전제 하에 지연전을 펴는 것이었다. 북한은 시간이 필요할 때엔 협상 테이블에 나섰고, 관심이 떨어져 협상 테이블에 나오려고 하지도 않을 때는 미사일을 쏴 관심을 집중시킨다. 중국 역시도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으로 교체되는 기간 동안 큰 변화 없이 일관된 외교전략을 구사했다. 제재에는 참여하지 않거나 소극적, 그렇다고 북한의 핵개발을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으며, 북한에게 구두경고 이상을 하지 않고, 동시에 동북아시아의 안보환경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이나 핵자산을 들여오는 데에는 반대하는 식이다. 한국이 북한보다 국력이 강하고, 미국이 중국보다 강하다 해도 홈그라운드에서 하나의 이슈에만 집중하는 건 국력차를 극복하는 주요 동인이므로.


II. 발전하는 핵위협

 시간은 북한의 편이다. 한미가 한 번도 제대로 된 공조 없이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동안 북한은 이제 ICBM개발을 앞두고 있다. 핵개발에 대해, 혹은 자체핵무장의 역사에 대해 공부한 사람들에게 핵개발에서 진정한 허들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전부 핵물질을 말한다. 그들이 IAEA의 사찰을 거부하고 핵물질을 확보했을 때 발사체나 내폭 기술 같은 것들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기술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설계도나 도면 이런 것들은 결국 NC머신으로 극복이 되는 것이고 발사체나 핵물질 추출, 핵실험의 성공 등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계속해서 발전한다. 즉 한 번 어떤 국가가 핵물질을 확보하고 핵개발에 나선다고 했을 때 그걸 근본적으로 막을 국제적 해법은 "아무것도 없다." 침공을 통한 레짐 체인지가 아니라면.

 여기서 북한의 핵개발에서 중요한 허들들을 몇 개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핵물질 확보: 핵개발에서 제일 필수적인 물질
 -핵실험: 한국에 대한 핵공격 가능성
 -대륙간탄도탄(ICBM): 미국에 대한 선제타격(first strike)가능성
 -수중발사탄토탄(SLBM):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한 생존성 보장. 즉 2차공격(second strike) 가능성

 현재 북한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는 확실히 도달했고, 세 번째 단계는 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 국제사회가 모두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신뢰성은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다. 하지만 만약, 만약 네 번째 단계까지 진행된다고 하는 경우 한국과 미국은 절대 군사적 옵션을 검토할 수 없다. 선제타격으로 모든 핵무기가 사라진다는 보장이 없는 한 어떤 국가가 먼저 자국민의 목숨 몇십만을 걸고 도박할 수 있겠는가?

 끓는 물 속의 개구리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찬물을 담은 냄비에 개구리를 넣고 약불로 끓이면, 온도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 채 가만히 삶아지고 만다. 나는 남한이 바로 그 개구리라고 본다. 핵위협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계속해서 안보지형이 바뀜에도 아직은 견딜 만하다라고 생각하는 개구리 말이다. 1차 북핵 위기 때 한국과 미국은 아직은 핵실험이 아니라 협상할 수 있다고 했다. 영변 원자로 때도 마찬가지였다. 1차 핵실험 때도, 농축우라늄(HEU) 시설을 공개했을 때도 아직 다음 허들이 남았다고 하며 우리는 협상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했다. 결국 이렇게 '아직은 괜찮다'라고 하며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동안 시간은 흘렀고 북한은 계속해서 다음 허들로 향했다. 94년부터 25년 정도가 흘러 여기까지 왔다. 자, 앞으로 25년 안에 그들은 과연 네 번째 단계를 넘어서지 못할까?


III. 불가능한 핵폐기 (feat.레짐체인지)

 일단 대전제로 동의하고 넘어가야 하는 건 핵폐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핵폐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핵폐기를 완전히 하기 위해 얼마나 넘어야 할 산이 많은가는 2002년 1월 10일자 보도자료에서 IAEA가 북한의 전면적인 협력 하에서도 최소 3년에서 4년이 필요하다고 발표할 정도였다. 이건 이명박 대북정책 재검토라는 sonnet님의 글을 보더라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sonnet.egloos.com/3543857)

 간단히 요약하면 핵폐기를 위해서는 북한이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NPT에 재가입한 뒤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핵물질의 일부가 빠져나가는 일 없이 모두 폐기되었다고 양측이 확신할 때까지 검증과 현장조사를 받고 이 과정에서 신고된 핵물질의 양이 정확한지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천연우라늄에서 Pu239를 생성시키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양은 매우 미량이며(1kg당 약 250mmg), 또한 연료봉에서의 플루토늄 회수율에 따라 재처리 후의 양도 매우 넓은 범위 내에서 결정된다. 수만개의 연료봉을 재처리했으니 적어도 미국이 생각하는 플루토늄의 양과 북한이 제출한 플루토늄의 양은 몇십 킬로그램 이상이 차이날 것이며 그 양이면 핵무기 몇 개가 신고되지 않아도 모를 양인 것이다. 거기에다가 북한은 농축우라늄 시설까지 있으니 IAEA가 사찰해야 할 핵 프로그램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

 즉, 핵폐기를 양쪽이 합의한다 해도 그 진행에는 적어도 수십여 년이 걸릴 수밖에 없으며 이만하면 됐다, 라고 하는 건 오로지 정치적 결단으로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 말은, 핵폐기가 이뤄진다 해도 그것이 곧 남한의 안전보장은 아니라는 뜻이다.

 핵폐기의 실무적인 불가능성에 대해 말했으니 핵폐기의 정치적 비타당성에 대해 말해보자. 북한은 핵을 안전보장 때문에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건 이제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안전보장 "때문에" 시작했다는 사실이 "안전보장만으로는" 핵을 포기하게 만들도록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왜 말뿐인 안전보장을 믿어야 할까? 이미 자기 손에 더 확실한 안전보장 수단이 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은 이미 이 핵으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포기했고 수많은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북한에게 핵은 단순한 무기나 안전보장의 수단을 이미 넘어섰다. 핵의 매몰비용은 어마어마하고, 핵은 북한에게 정권의 안보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많이 받아낼 수 있는 보물이다. 물론 받아낸다고 해도 핵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보물이니까. 하지만 북한이 뭘 원하는지, 얼만큼이면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남한, 미국, 중국 모두 북한의 끝모를 욕심을 채울 때까지 잔을 따를 생각은 없다. 골룸의 반지 같은 거지.

 또다른 마이너한 귀결 하나를 없애면 레짐 체인지다. 지금껏 북한 정권에 대해 예측하려는 시도는 다 틀려먹었다. 이만하면 평화무드라고 생각하면 미사일을 쐈다. 그런 북한에게 매우 일관된 점은 바로 김정은의 교체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려는 점이다. 2인자인 장성택, 오극렬. 중국이 만약 북한 정권을 괴뢰정권으로 바꿨을 때 가능한 후보자인 김정남은 모두 제거되었다. 이제 북한 정권에는 김정은을 제외하고 유력한 차기 후보자가 없는 형편이다. 대체자가 없는 상태에서 북한 정권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국제관계에서 불확실성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기에 미국과 중국 모두 레짐 체인지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IV. 순차게임에서의 내쉬균형

 국제정치학에서 유명한 가설 중 하나는 민주평화론이다.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서의 전쟁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 가설이 귀납적이기 때문에 하나의 반례로도 무너질 약한 주장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시간이 흘러 보니 꽤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민주정체 하에서 어떤 지도자가 장기적 이득을 위해 단기적으로 집단의 일부를 희생시키자고 설득할 수 있겠는가.

 남북한을 보면 단기적 목표와 장기적 목표 사이의 상충관계를 관찰할 수 있다. 남한에게는 단기적으로 전쟁을 피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눈앞의 평화와 높아진 전쟁위협 중 전면전을 택할 배짱있는 지도자는 아무도 없다. 인구의 1/5이 밀집된 수도가 휴전선에서 50km안에 있고 단거리 투발수단으로도 충분히 타격 가능한 나라의 수장이 눈앞의 전면전의 위협을 두고도 선제타격을 하자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남한에게 아이러니한 것은 단기적으로 보면 최선의 선택들이 계속 순차게임이 진행되면서 장기적으로는 결국 핵위협에 굴복하는 길로 간다는 것이다.

 북한 역시 그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핵을 발전시키는 것은 그들에게는 단기적으로 정권의 안전보장을 위해 중요하다.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 리비아가 미국의 방관 속에 정권교체되는 걸 보며 그러한 심증은 굳어졌을 것이다. 함부로 북한을 공격해 들어가다간 갈길 잃은 핵무기가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니까. 하지만 핵을 계속해서 발전시킬수록 장기적으로는 미국에게 선제타격을 하고 싶은 욕구를 더욱 크게 만든다. 북한은 외줄타기를 하고 있고 남한은 외길을 가고 있다.

 북한에 의한 자체적인 핵폐기와 레짐 체인지라는 옵션을 제거하면, 남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핵은 변하지 않는 상수가 될 것이며 2.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대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커진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 어떤 파국으로 흘러갈지는 미국의 손에 결정되게 된다. 마침내 미국이 실제 핵위협 하에 놓였을 때 동맹국에게 자국의 핵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실제 핵우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가 moment of truth가 될 것이고 한미관계의 tipping point가 될 것이다. 인정할 것인가? 칠 것인가? 두 가지 선택밖에는 없고 그곳에 대한민국의 선택지는 없다.


V. 북핵을 상수로서 받아들이고 새로운 핵전략을 고민해야.

 한국은 이 핵게임에서 주요 행위자가 아니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role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주요 피해자라는 이름이다. 매파 vs.매파로 북미가 서로 강경책을 사용하고 비난을 넘어 서로가 선제타격을 할 때 한국이야말로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그동안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일어나지 않을 북한의 핵폐기 가능성과 협상에 매달려 왔다. 사실상 북한이 한 번도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았던 그 유화책들 말이다. 개성공단, 대북원조, 대중외교, 2천만 kt 송전제안...... 이런 것들은 결국 북한의 핵 프로그램 진행에 전혀 제동을 걸지 못했다. 이제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때다.

 나는 종국에는 향후 20년 안에 한국 안에 핵무기가 배치될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미군 무기에 의한 핵무기 재배치일지, 아니면 자체핵무장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며칠 전 송영무 국방부장관이 대한민국 내 핵무기 재배치에 대한 안건을 꺼냈다. 청와대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진화를 시도했고 이건 누군가에게 불협화음으로 보이겠지만 나는 한국의 수뇌부가 무조건적인 비핵화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점에서, NSC 내에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대선토론 때 유승민이 전술핵무기 재배치 주장을 하자, 우리 나라는 비확산조약 가입했다. 한반도 비핵화 모르냐. 이거 완전 전쟁광이네 하는 많은 얘기가 쏟아졌지만 나는 핵무기 재배치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본다. 어쩌면 자체핵무장까지도.  

 왜냐하면 핵무기로 위협받는 국가에게 핵무장보다 더 확실한 안전보장은 없으며 지금껏 핵위협을 당한 모든 국가들은 예외 없이 자체핵무장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소련: 미국의 핵위협에 대해 자체핵무장
 -영국, 프랑스: 소련의 핵위협(수에즈 위기)에 대해 자체핵무장
 -중국: 중소갈등에 대해 자체핵무장
 -인도: 중국의 핵무장에 대해 자체핵무장
 -파키스탄: 인도의 핵무장에 대해 자체핵무장

 사실 한반도에는 이미 핵무기가 재배치된 적이 있으며 핵무기 재배치는 기존의 한미동맹에서의 확장적 억제(핵우산)과 동일하다. 그러나 한국이 불안감을 갖는 부분은 그 보복의 신뢰성이다. 과연 북한이 계속해서 핵능력과 핵위협을 증가시킨다고 했을 때 그 보복의 신뢰성은 보장될 것인가? 한국 시민들은 그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런 의미에서 전술핵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어차피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단독작전이 가능한 이상, 한국군이 같이 참여하는 한미연합사에서 핵무기를 통제하는 게 한반도에서의 핵전략 독트린에 한국의 입장을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더 필요하다.

 미국이 과연 자신의 핵무기를 우리에게 대여해 주겠느냐? 라는 의견이 있는데 이런 건 충분히 기술적으로 해결 가능하다. 한국과 미국 정상 양쪽의 열쇠가 있어야만 개봉이 가능한 dual key방식을 생각할 수 있고, 아니면 한국은 미국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게 규격만 전달받은 다음, 유사시에는 핵탄두만 결합해 바로 발사가 가능하도록 모듈을 만들 수도 있다. 어쨌거나 한국이 지금 당장 추구할 만한 것으로는 한미연합사 체제를 유지하면서 유사시 북한이 한반도에 핵을 발사했을 때 최소한 한국이 절반의 지분을 갖고 있는 핵무기가 남한 땅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있겠으며 장기적으로는 먼저 자체핵무장의 기수를 드는 것이 아니라, 일본 등이 핵무장을 할 때 슬그머니 그 흐름에 합류하여 핵무장을 할 수 있겠다. 이 글의 결론을 여기서 일찍 요약하자면 "단기적으로는 핵무기 재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체핵무장을 꼭 해야한다면 일본의 핵무장에 편승해야 한다"가 되겠다.

 몇 가지 예상되는 반론에 대해 얘기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의 재배치를 극렬 반대할 것이라는 것인데 그건 재배치를 반대하는 근본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들이 우리에게 핵우산을 씌워주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북한이 핵공갈을 치지 못하도록 막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 국가에게 자신의 생존만큼 강한 가치는 없다. 물론 지금 당장 중국의 예상되는 경제보복을 감수하고 핵무기 재배치에 올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핵무기 재배치가 가져다 줄 이득(=북핵이 우리에게 미칠 피해)이 커지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행동할 동인은 점차 커질 것이다. 그리고 명분론적으로도 중국이 북핵 리스크를 방조하고 더 키워온 측면이 있고 말이다.    

 두 번째는 매번 등장하는 말인데 핵무기 재배치를 주장하면 전쟁광이라는 것이다.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데 어떻게 그걸 감수할 수 있는가라는 말이지. 이럴 때 매번 등장하는 말이 전쟁이 나면 바로 누가 죽습니까? 바로 니가 죽습니다라는 김경진의 말이다.

 나도 평화를 사랑한다. 우리는 전면전을 치룬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전쟁의 참화를 기억하는 세대는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났다. 마치 이게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지도 모르고 멋대로 지껄이는 철부지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김경진의 말보다는 레프 트로츠키의 quote가 더 적절한 것 같다.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 지도 모르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

 전쟁을 각오한다는 의지 없이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 우리에게 평화는 전쟁보다 항상 우월한 선택지이지만, 강경책을 편다고 항상 전면전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저들은 우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고, 우리에게 총이 발사되지 않을 선택지는 북한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미국이 총을 잘 들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총을 들고 북한을 같이 겨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전쟁만은 하지 않겠다는 건 지도자의 목표로서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대다수의 시민들에겐 가장 훌륭한 목표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걸 가슴에 품고 있는 것과 우리는 절대로 전쟁만은 피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다른 얘기이고 스스로 선택지를 제한하는 행위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전쟁을 각오하지 않으면서 전쟁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세 번째는 상대방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거냐, 상대방을 쓰러트린다는 얘기지 않느냐라는 건데 역사적으로는 오히려 적절한 강경책이 동반될 때 협상이 더 잘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요하다면 힘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의지를 깔고 있지 않은 협상은 절대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무언가를 하지 말라는 선언은 만약 네가 무언가를 하면 내가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if~ then) 구문이고, 그건 반드시 내가 뭘 하겠다는 의지를 진지하게 납득시키지 못하는 한 공염불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의 "레드라인" 발언이 비판받는 건 그 지점일 것이다. 상대에게 내가 뭘 할지 전혀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말은 부드럽게 하라는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말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인데 비핵화 선언이 실체적으로 북핵에 족쇄를 걸지 못하는 한 비핵화 선언은 우리 자신만을 제동거는 물건이다. 북한이 이미 실천하지 않는 구문에 우리만 홀로 얽매여 있는 꼴이다. 우리가 먼저 비핵화해야만 상대방에게 핵포기를 설득할 수 있다는 정당성은 말뿐이고 지금까지 전혀 작동을 안했다.  

 다행인 점은 현재 문재인 정부가 유지하고 있는 높은 정부에 대한 신뢰도이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14년 동안 대정부신뢰도는 대단히 낮았다. 하지만 몇 가지 실수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많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이런 시기야말로 정부가 국민들에 대해 risky한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설득하기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북핵에 위협받고 있으며 이를 해소해 나가는 길은 당연히 편안하지 않은, 때로는 우리 국민들 중 누군가는 고통스러워 할 길이다. 국론은 분열될 것이고, 민심은 이탈하고, 지지율도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이아말로, 과반수의 대중에게 투표로 선출된 정통성 있는 지도자만이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때이다. 그것은 국민에게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호소하고, 그리하여 공동체를 진정으로 단결할 수 있는 힘이다.

앞서 나는 구조와 인물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2차 세계대전의 발생이 필연적이었더라도, 히틀러를 용납할 수 없고, 히틀러에게 평화를 구걸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은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델리노 루즈벨트라는 개인이었다. 윈스턴 처칠은 그의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만약 대영제국과 그 연방이 천년을 이어간다면, 후대의 인류는 '바로 지금이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라고. 문재인이라는 개인은 설사 그게 진흙탕으로 가득 찬 길이라 할지라도 점차 악화되는 이 구조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떻게 국민들을 단결시키고 국론을 이끌어 나갈지를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아직까진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고, 대화의 창구는 열려 있다는 말이 아니라.

 나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당대에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당대에 대해 절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당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많은 변화가 보이기 때문에 막상 진정으로 진행되는 커다란 변화들에게는 둔감한 면이 있다. 노무현과 이명박 때가 달랐고, 박근혜와 문재인 때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커다란 면은 비슷하다. 신생아는 줄어가고 있고, 일자리는 대체되고 있으며, 직업 내에서의 임금격차도 심화되고 있다. 북핵도 비슷하다. 우리가 뭘 선택했든 5년동안 무엇이 진행되었든 그들은 계속해서 핵개발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왔다. 이 시기를 나중에 요약해보면 북한은 핵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남한은 그에 대응하여 핵무기를 배치했다라고 한 문장으로 정리될지도 모른다.

그동안 우리가 '북한에 대해' 뭘 해보려고 했던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이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




시대유감 생각 想


1

 제대로 블로그를 시작한 지는 5년 정도 되었다. 그 사이에 이글루스는 활발한 의견 교환장으로서의 힘을 잃었다. 인터넷을 시작한 것은 중학생 때였으니 인터넷 커뮤니티의 쇠락을 본 것도 한두 번은 아니다. 새로운 커뮤니티들이 놀랍지는 않다. 결국 사람들은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본능이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만큼 알고 있으니 내 얘기를 들어라.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과연 그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나는 늘 의심에 차 있다. 

2

 이 블로그에서는 찾아온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의견을 물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으나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물어본 사람에게 무례할지는 모르겠으나,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생각은 단지 생각일 뿐이다. 그것이 진정으로서 힘을 갖기 위해서는 진실이어야 한다. 진실되기 위해서는 깊게 생각해야 한다. 즉, 어떤 생각이 힘을 갖기 위해서는 깊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내 단편적인 생각은 힘이 없다. 진실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누군가는 내가, 남들에겐 없는 통찰과 직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항상 통찰과 직관은 관찰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깊은 생각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같은 활자에도 불구하고 그런 단편적인 질문에 답하는 내 목소리는 항상 초라하다. 하지만 내가 비로소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을 때는, 깊게 생각하고 집요하게 다듬으며 그 생각을 가장 간단한 단어로 말할 수 있을 때 뿐이다.  

 하지만 진실을 위해선 자원이 필요하다. 시간, 에너지, 돈. 우리는 항상 진실을 만들기 위해 자원을 소모한다. 우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진실의 양은 한계가 있다. 물론 시간, 에너지, 돈을 진실을 만들기 위해 만들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자원을 복싱에 많이 투자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 나에겐 더 많은 것들이 선택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3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이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느낀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자신의 자원을 투자하기보다는, 그저 자원을 투자했다고 여겨지는 누군가의 말을 읊는 데 열중한다. 본질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갖지 않을 것이라면 왜 그들이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최근 그것을 가장 많이 느꼈을 때는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은 메이웨더-파퀴아오 전이었다. 공중파 중계의 힘이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이 매치에 대해 흥미를 가졌었다. 그로 인해 인터넷 커뮤니티 역시 메이웨더-파퀴아오 전을 가지고 많이 갑론을박을 하였는데, 탁견은 고사하고 애초에 남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찾지 못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 양쪽 경기를 합쳐 5전 이상 주의깊게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것은 국내의 복싱인들 설문조사에서도 느꼈던 것이다. 그 때 아마 유명우씨와 김광선씨 등 몇몇 사람들의 발언들을 직접 인용하고 국내외 복싱인 100명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던 것 같은데, 그들 중 남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볼 적이 없다. 애초에 그들이 생각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그것에 대해 정말로 알기보다는 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다는 데 행동이 기인한다고 나는 추측한다. 

 그래서 나는 말을 안하기로 했다. 

4

 그렇다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예전에 본 진실된 포스트 하나를 소개한다. 

http://nbamania.com/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119288&sca=&sfl=wr_subject&stx=%ED%8F%AC%ED%8F%AC%EB%B9%84%EC%B9%98&sop=and&scrap_mode=

5

 요즈음은 진실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더 흥미있다. 의견도 좋지만 어떤 반 영구적인 것을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에게 기여하고 싶다. 일하고 싶다. 소설도 쓰고 싶고, 프로그램도 만들고 싶다. 

 다수의 참여를 허용한다면, 페이스북처럼은 안 되고 싶다. 이제 인터넷 유머자료든 카드뉴스든 진실 같지도 않고 흥미 본위의 가십에 질렸다. 페이스북에서 다른 사람들이 눌러놓은 좋아요 따위에 환장한 인터넷 자료들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차라리 디시인사이드가 나아 보일 정도다. 거긴 최소한 찌라시들이 돌지는 않으니까. 나는 모든 스스로 생각하는 자료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무리 허섭해도 다양한 의견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휘발성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지만 의견교환이 빨라지면서 의견이 획일화되는 데 나는 유감이다. 한 번 봤던 이야기는 두 번 보면 질리니까.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메모장

메모장